「전관산전」은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남주인공 전관산이 일찍 죽을 운명을 극복하는 이야기와 여주인공 정 소저가 영웅적 능력을 발휘하는 이야기가 합쳐진 작품이다. 특히 정 소저가 신이한 도술로 전관산의 수명을 연장하고 중국에서 없어진 옥새를 찾아내는 활약상이 중점적으로 펼쳐진다.
숙종대왕 즉위 초, 강원도 금강산의 학동촌에 전광월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전광월은 자식이 없어서, 석불(石佛)을 받들 절을 짓고 아들을 점지 받았다. 열 달 뒤 남자아이가 태어났는데, 그 아이는 기골(氣骨)이 장대(壯大)하고 얼굴이 비범(非凡)하였다. 전광월은 아이의 이름을 ‘관산’이라 하였다. 관산은 점점 자라면서 총명(聰明)하여 시서백가어(詩書百家語)를 모두 깨우쳤고, 풍채(風采) 또한 좋았다.
그런데 관산은 단명(短命)할 팔자(八字)라 15세에 죽을 운명이었다. 죽을 날이 가까워지자, 관산은 부모 앞에서 죽느니 차라리 나가서 죽겠다고 결심하여 노비 충남과 함께 집을 떠났다. 도중에 우연히 만난 판수로부터 한양에 사는 정 승상(丞相)의 딸과 결혼하면 살 수 있다는 비방(祕方)을 들었다. 정 소저는 전생에 옥황상제(玉皇上帝)의 서녀(庶女)였는데 죄를 지어 인간으로 태어났다. 그래서 천문지리와 음양(陰陽)의 이치(理致)를 통달하고 신이한 술법(術法)을 지닌 여성이었다.
한양에 당도한 관산은 주막 노구(老嫗)와 그 자녀들의 도움을 받아 정 소저의 방으로 몰래 들어가게 되었다. 책을 보고 있던 정 소저는 관산의 사정을 듣고 측은히 여겨, 경면 주사(鏡面朱砂)를 이용하여 관산을 죽이러 온 불덩이를 3번 물리쳤다. 이로써 관산은 연명(延命)하게 되었다. 또 정 소저는 관산에게 과거 시험 문제도 미리 알려 주었다. 결국 관산은 장원 급제(壯元及第)하여 정 소저와 결혼하고, 임금의 명으로 공주도 아내로 맞아들였다. 관산은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제수(除授)되어, 부모님과 함께 한양으로 이사하였다.
그러던 중 명나라 천자(天子)가 옥새를 잃어버려, 옥새 찾을 사람을 보내라고 조선에 요청하였다. 이때 정 소저가 자원하여 사신(使臣)이 되어 명나라로 갔다. 정 소저는 오방신장(五方神將)을 부리는 도술을 써서, 번국의 번왕이 반역할 뜻이 있어서 옥새를 훔쳐갔다는 사실을 알아내 옥새를 찾았다. 이에 명나라 천자는 번국을 정벌(征伐)하였다. 그리고 관산에게는 번국왕의 직첩(職牒)을 내리고 정 소저는 왕후(王后)로 봉하였다. 정 소저가 귀국하자, 임금이 관산을 좌승상(左丞相)으로 봉하고 정 소저를 정렬부인(貞烈夫人)으로 봉하였다.
「전관산전」은 운명 극복이 점층적(漸層的) ·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고전소설이다. '단명할 운명을 타고난 남성이 재상가(宰相家)의 여성과 결연(結緣)하여 수명을 연장하게 된다'는 「연명설화」가 수용되어 있는데, 이는 고전소설 「반필석전(班弼錫傳)」 · 「사대장전 또는 사안전」 · 「이운선전」 · 「홍연전」 등에도 나타난다. 또한 「전관산전」에는 '가난하게 살던 주인공이 거짓 점을 친 것이 계기가 되어 명인(名人)이라는 헛소문이 나고 잃어버린 옥새를 찾아야 하는 고난을 해결한다'는 내용의 「다시 찾은 옥새」 설화(說話)도 수용되어 있다. 결국 이 작품은 「연명설화」와 「다시 찾은 옥새」 설화를 두 축으로 삼아 현실에 맞게 서사를 변용하고 있다.
한편, 「전관산전」은 숙종대왕 즉위 초를 배경으로 하여 전관산과 정 소저의 이야기를 예정과 선택의 결합 구조로 풀어 나간다. 내용상 여성 주인공이 우위(優位)를 점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화소(話素)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작품에서 정 소저는 주체적(主體的)이고 능동적(能動的)으로 능력을 발휘하여 관산의 운명을 바꾸고, 여성의 모습 그대로 중국에 사신을 가서 활약한다. 여성 영웅소설처럼 여성이 직접 전장(戰場)에 나가 싸우지는 않지만, 여성의 능력이 파격적(破格的)으로 상승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특히 남주인공의 출생담(出生談)은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여주인공의 출생담은 간접적으로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우위에 있는 것으로 나오는 점은 여성의 영웅성(英雄性)을 더욱 강조하는 부분이다. 또 정 소저가 남복(男服)을 입지 않고 당당히 여복(女服)을 입은 채 공적 영역(公的領域)에 진출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다만, 이 작품에서 여성성은 남성적 세계와의 평형을 유지하는 수준에서만 표출되고 있어 가부장적(家父長的) 사회의 한계를 드러낸다. 이는 여성의 사회 진출 욕구와 당대에 보편적인 남성 중심적(男性中心的) 사고를 대비시켜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乖離感)을 표출하는 부분이다.
이 작품이 갖는 소설사적 의의는 첫째, 여성을 보조적인 인물이 아닌 주체적 인물로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 둘째, 전관산과 정 소저의 만남은 예정과 선택이 결합된 성격의 만남이며 지감(知鑑)에 의한 만남이라는 점, 셋째,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유교적인 사상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라는 점, 넷째, 변화해 가는 여성의 위치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는 점 등이다.
「전관산전」은 당시의 시대상이 잘 반영되어 있고, 여성의 잠재된 능력을 드러내 보이면서 남성의 일대기(一代記)를 그리고 있다. 따라서 여성 이인소설로부터 후기 여성 영웅소설로 전이(轉移)되어 가는 과정에서, 이 작품은 중간적이며 과도기적(過渡期的)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소설이라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