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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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궁중의 제향(祭享) · 빈례(賓禮) · 사여(賜與)에 쓸 가축을 기르는 일을 맡았던 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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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궁중의 제향(祭享) · 빈례(賓禮) · 사여(賜與)에 쓸 가축을 기르는 일을 맡았던 관서.
내용

고려시대의 장생서(掌牲署)를 계승해 1392년(태조 1) 전구서(典廐署)를 설치했고, 1460년(세조 6) 전생서로 개칭하였다. 관서는 서울의 남대문 밖 남산 남쪽 둔지방(屯智坊: 현재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동 일대)에 설치하였다.

이곳에는 황우(黃牛) 3마리, 흑우(黑牛) 28마리, 양 60마리, 염소 14마리, 돼지 330마리를 항상 사육하였다. 그리하여 궁중에서 1년에 소요되는 황우 3마리, 흑우 35마리, 양 57마리, 염소 14마리, 돼지 521마리를 공급하였다. 그러나 그 수량은 왕이 친히 참석하는 대제(大祭)에는 추가하고 또 별제향(別祭享)에 사용하는 것은 그 양에 한정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궁중에서 소요되는 가축은 전생서 한 곳에서만 모두 사육한 것이 아니었다. 일부는 전국 각지에 축류별로 사육 적지를 골라 배정, 새끼 때부터 기르게 한 뒤에 이를 공물(貢物)로 받아들여 사육하였다. 대동법(大同法) 실시 이후에는 원공가(元貢價: 원래 정해 놓은 값)를 지불해 그 양을 확보하고 일정기간 사육해 전생서에 공급하였다. 각 가축의 가격을 살펴보면 다음 [표]와 같다.

[표]전생서축류 수매가격표

종별 수량 산 지 마리당 가격
황우(黃牛) 3 쌀 25석
흑우(黑牛) 45 제주(940)·거제(5) 쌀 1석 3두와 무명 1필
염소 16 충청도 쌀 7석 7두
경기도 쌀 6석 10두
79 삼남 및 경기도 쌀 20석
황해·평안도 쌀 15석
함경도 5승포·4승포 1동 7필
돼지 615 쌀 6석

양은 국내에서 번식이 잘 안 되어 의주에서 면양(綿羊)을 수입해다가 전국 각지에서 사육했으며, 전생서는 여화도(汝火島: 지금의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에서 사육하였다. 전생서에서 이들 축류 사육에 소요되는 축료(畜料)와 초료(草料)는 그 양이 막대하였다. 일례로 1470년(성종 1) 경기도 각 읍에서 수납한 곡초(穀草)는 1,866동(同), 생초(生草)는 6,000동으로 이로 인한 민폐가 컸다.

대동법 실시 이후, 호조에서는 축료로 매월 초 콩 150석, 쌀 15석을 지급하였다. 그리고 선혜청에서는 초료로 5월부터 9월까지 매월 107석 12두,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곡초값으로 쌀 98석 12두를 지급해 공인(貢人)에게 조달하게 하였다. 또한, 전생서에서 사육하는 가축에 유행병이 있거나 새끼를 낳을 때는 의원을 배치해 대비하였다.

전생서의 관원은, 『경국대전』에 의하면, 타관으로 겸직하는 제조(提調) 1인과 주부(종6품) 1인, 직장(直長, 종7품) 1인, 봉사(奉事, 종8품) 1인, 참봉(종9품) 2인, 서리 8인이 있으며, 이 밖에 고직(庫直) 3인과 사령이 배치되었다. 그 뒤 직장 1인, 참봉 1인을 감축하였다.

또한, 1637년(인조 15)에는 사축서(司畜署)를 병합했다가 곧 이를 독립시켰다. 1797년(정조 21)에는 주재관(主宰官)으로 판관(종5품)을 새로 두어 종5품 아문으로 승격되었다. 1865년(고종 2)의 『대전회통』에는 제조 1인, 판관 1인, 직장 1인, 부봉사(정9품) 1인이 배치되고 주부·봉사·참봉을 감원하였다. 그 뒤 1894년(고종 31) 갑오경장 때 관제 개혁으로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태조실록(太祖實錄)』
『세조실록(世祖實錄)』
『성종실록(成宗實錄)』
『경국대전(經國大典)』
『속대전(續大典)』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대전통편(大典通編)』
『대전회통(大典會通)』
『만기요람(萬機要覽)』
『한국마정사연구』(남도영, 아세아문화사, 1976)
「조선시대의 목축업」(남도영, 『동양학』9, 1979)
「조선시대제주도목장: 한국목축업연구의 일단」(남도영, 『한국사연구』4, 1969)
집필자
남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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