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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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각 목장에서 우마(牛馬) 사육에 종사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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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각 목장에서 우마(牛馬) 사육에 종사하는 사람.
내용

그 유래는 ≪신증동국여지승람≫ 제주목조(濟州牧條)에 의하면 고려시대에 양노(養奴) 또는 노자(奴子)라 했고, 그 뒤 몽고가 제주도의 목장 경영을 위해 목마사육 전문가인 목호(牧胡)를 파견했는데, 1367년(공민왕 16)부터 목자라 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와 같은 목자의 신분 구성은 사사노비(寺社奴婢)·공천(公賤)·향리·양민 등으로 편성되었다. 원칙적으로는 16세에서부터 60세까지 국가의 말을 사육하는 국역(國馬看養役)에 종사하며 그 신분이 세습되었다.

전국의 목자수는 ≪세종실록≫ 지리지나 ≪목장도 牧場圖≫에 상세히 전하고 있다. 숙종 때 편찬된 ≪목장도≫에 의하면 경기도 874인, 충청도 705인, 경상도 166인, 전라도 1,006인, 황해도 421인, 평안도 176인, 함경도 444인, 제주도 754인, 정의현 365인, 대정현 126인, 기타 141인으로 모두 5, 178인이 되었다.

목자의 직무는 마필(馬匹)을 사육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였다. 고려시대는 말 4필을, 조선 초기는 10필을 사육하도록 규정했으나, 그 뒤 1425년(세종 7) 우마 25필로 증가하였다.

≪경국대전≫ 병전(兵典) 구목(廐牧)에 의하면 각 도의 목장에 암말 100필, 수말 15필로 1군(群)을 삼고 1군마다 군두(群頭) 1인, 군부(群副) 2인, 목자 4인씩 배정하였다. 이들은 종6품의 감목관(監牧官)의 지휘 감독 아래 매년 자식(慈息) 책임량을 85필 이상으로 규정하였으니 목자 1인당 20여필 이상을 생산해야 하였다.

만약, 관리 소홀로 손실되거나 죽을 경우 치죄했으며, 말의 등급에 따라 5승포(五升布)로 4,500필로 대납해야 하였다. 이로 인한 목자의 가산 탕진이나 유망(流亡)이 빈번해 목자우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하여 목자위전(牧子位田) 2결(結)을 지급하고 또한 복호(復戶)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근무 성적에 따라 승진과 포상의 길도 마련해주었다. 1년에 자식 20필 이상을 얻으면 상등, 15필 이상은 중등, 15필 이하는 하등으로 하여 30개월 내 상등을 3회 이상 받으면 승진해 녹용(錄用)했으며 그 이하인 자는 논죄하였다.

따라서, 목자는 군두·경관직(京官職) 등으로 승진할 수 있는 법적 보장책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목자의 신분적 지위는 노비와 거의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그들에게 과중한 국역 분담이 주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목장마 사육에 필요한 마료(馬料)의 준비, 목마군(牧馬軍)에의 편성, 그리고 지방의 특산물인 소나 말의 고기나 가죽 등을 토산물로 바쳐야 하였다. 이외에도 감목관·감사·사복시·점마별감 등 관원의 순행에 따른 수탈로 인해 그들의 고통은 매우 심해 유리(流離), 도망하는 일이 잦았다.

국가에서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목자의 호적을 별도로 작성해 통제하였다. 또한, 목자의 아들 3정(丁)을 세습하도록 규정하는가 하면 동거 친족 중의 1명은 다른 역을 면제해 목자역을 부담하도록 규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목자들의 고역은 목장마를 부정으로 매각하거나, 사축(私畜)을 해서 매매하고 또 마필을 도살, 유실했다고 거짓 보고해 사복(私腹)을 채우는 일이 많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고려사』
『세종실록』
『성종실록』
『중종실록』
『경국대전』
『목장지도(牧場地圖)』
『증보문헌비고』
『대전회통』
「조선목자고」(남도영, 『동국사학』 8, 1965)
『한국마정사연구』(남도영, 아세아문화사, 1976)
「조선시대의 마정연구 Ⅰ·Ⅱ」(남도영, 『한국학연구』 2, 동국대학교, 1977)
집필자
남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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