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해방 이후 조선연극동맹 중앙집행위원, 서울시문화위원회 영화부위원 등을 역임한 연출가. 영화감독·배우.
생애 및 활동사항
귀국한 후 고향에 머물다가 1938년 고려영화사에서 자신이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주연을 맡은 「복지만리(福地萬里)」 제작에 들어가 1941년에 개봉했다. 이 작품은 일제의 만주침략을 정당화한 영화로, 만주 현지 로케이션을 한 대작이며 그의 영화 작가적 명성을 높여주었으나, 이 작품으로 인하여 일본경찰에 잡혀 3개월간의 옥고를 치렀다. 1939년부터 연극에 관심을 갖고 연극단체 고협을 창설했으며, 이를 기반으로「청춘무성」·「노처녀기」·「비」·「주부경제학」·「부엉이 우는 마을」 등을 연출했다. 1942년 천창근(泉昌根)으로 창씨했으며, 1943년 7월 김태진과 함께 극단 태양(太陽)을 창설했다. 해방 직전인 1945년 6월 「양자강」을 연극무대에 올렸다.
광복이 되자 1945년 12월 조선연극동맹을 결성할 때 중앙집행위원에 선임되었으며, 1949년 3월 서울시 문화위원회 영화부 위원으로 선정되었다. 한국전쟁 중인 1951년 부산에서 상록극회(常綠劇會)를 창립하는 등 연극활동을 벌였는데, 주로 각본과 연출 또는 극단대표를 맡았다. 한국전쟁 직후부터 각본·감독 또는 주연으로 활동하면서 「단종애사(端宗哀史)」(1956)·「마의태자」(1956)·「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1959)·「삼일독립운동」(1959)·「아아, 백범 김구선생」(1960) 등을 제작했다. 1973년 1월 19일 사망했다.
참고문헌
- 『친일인명사전』3, (민족문제연구소, 2009)
- 『한국근현대인물자료』(국사편찬위원회)
- 『평전·한국영화인열전』(이영일, 영화진흥공사, 1983)
- 『한국영화전사』(이영일, 삼애사, 1969)
- 『경향신문』(1949.3.24)
- 『서울신문』(1945.12.23·1949.3.21)
- 『매일신보』(1943.7.24)
- 『대동아』(1943.7.1)
- 『동아일보』(1934.3.5·1937.6.7·1938.11.16)
- 「내가 본 상해의 이경손씨」(『동광』 39, 1932.11.1)
- 「조선영화인 언파레드」(심훈, 『동광』 23, 193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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