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악지(樂志)에 의하면 고려시대에 들어온 당악정재 「포구락(抛毬樂)」에서 연주되던 곡으로 성종 때 악공취재(樂工取才) 곡목에 들어 있고, 1759년(영조 35) 세종 때의 음악을 모은 것으로 전하는 『대악전보(大樂前譜)』에 「절화령」의 곡명이 보인다.
『고려사』의 포구락조에 나온 「절화령」은 사설없이 연주되므로 그것이 기악곡임을 알 수 있는데, 이에 이어서 「절화령」이 사설, 즉 「절화령삼대사(折花令三臺詞)」로 불려져 그것이 사악(詞樂)의 하나임을 짐작하게 한다.
「절화령삼대사」가 그치면 다시 「절화령」을 연주하여 노래(詞)와 음악(樂)이 따로따로 연주되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악학궤범』의 포구락에는 기악곡으로 연주되는 것이 「절화삼대(折花三臺)」이고, 그 사(詞)도 영(令)이 빠진 「절화령삼대사」로 되어 있어,『악학궤범』당시에는「절화령」이「절화삼대」로도 불려진 듯하다.
또, 『경국대전』당악곡 취재조에는 「절화삼대」·「절화급박(折花急迫)」이라는 곡명이 보여 「절화령」과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