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김종직(金宗直)의 수적(手迹)과 관계문서 및 유품.
내용
서찰로는 1468년(세조 14) 김종직의 어머니, 1470년(성종 1) 김종직의 중형, 1483년 김종직의 전(前) 부인의 것이 있다. 분재기는 1509년(중종 4) 김종직의 후처 문씨가 친정부모로부터 받은 허여문기, 1543년과 1544년 김종직 후처 문씨의 자녀 분재문기, 1556년(명종 11) 김종직의 아들 숭년(嵩年)의 자녀에 대한 분재문기, 1522년(중종 17)∼1566년 김종직의 손자 유(維)의 처부 최모(崔某)의 자녀 분재문기, 1566년 김종직의 증손 몽령(夢齡) 남매의 분재문기 등이 있다.
명문으로는 1505년(연산군 11), 1529년의 전답매득 문기가 있다. 호구단자는 김종직 후처 문씨의 것 외에 26건이 있고, 점련문기로는 1548년 최세충(崔世忠)의 것을 포함하여 10건이 있다. 다음으로 김종직의 유품은 상아홀(象牙笏) · 필옹옥우(畢翁玉友, 성종 하사 玉硯) · 매화연(梅花硯, 四君子 조각) · 유리주병(琉璃酒甁, 成宗 下賜品) 등이 있다.
점필재김종직의 『필재당후일기』와 교지류 · 서찰 · 분재기 · 명문 · 호구단자 등은 한국 사회경제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김종직은 영남사림파의 종장(宗匠)이며, 참혹한 무오사화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이 귀중한 전적 및 고문서를 보존하고 있어 그 국가유산의 가치는 더욱 크다고 하겠다. 경상북도 고령군김병식(金炳埴)이 소장하고 있다.
참고문헌
- 「점필재김종직가문연구(佔畢齋金宗直家門硏究)」(김용만, 『교남사학』 창간호, 1985)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