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경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동지경연사, 대사간,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공직(公直)
  • 추천(秋川)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인조반정
  • 본관동래(東萊)
  • 사망 연도1644년(인조 22)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이조참판
  • 출생 연도1586년(선조 19)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조원래 (순천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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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동지경연사, 대사간,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공직(公直), 호는 추천(秋川). 정복겸(鄭福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유길(鄭惟吉)이고, 아버지는 좌의정 정창연(鄭昌衍)이며, 어머니는 한세건(韓世建)의 딸이다. 판서 정광성(鄭廣成)의 아우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12년(광해군 4)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그해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수찬(修撰)·정언(正言)을 지내고 이듬해 인목대비(仁穆大妃) 폐모론이 일자 이론(異論)을 내세워 반대하고 청의(淸議)를 따랐다.

그 뒤 1616년 사간이 된 뒤, 상의원정(尙衣院正)·사인·응교·전한·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1618년 대비삭호(大妃削號)를 포함한 폐모론이 재론되었을 때, 아버지 창연이 두문불출하여 정청(庭請)에 불참, 화를 입을 지경에 이르자 아버지를 위하여 대신 참가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때 사간에 임명되자, 과거의 정청참여를 자책하여 간관으로서 자격이 없음을 스스로 지적, 사퇴하고자 하였으나 왕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괄(李适)의 난 때 형 정광성은 아버지를 모시고 그는 어가(御駕)를 호종하였으며, 정묘호란 때는 형이 임금을 따르고 자신이 아버지를 모심으로써 형제가 군부(君父)에 대한 충효를 함께 실천하였다 하여 칭송을 받았다. 그뒤 예조참의·충청도관찰사·대사헌·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대사간·이조참판 등을 지냈다.

참고문헌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청선고(淸選考)』

  •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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