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동지경연사, 대사간,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1616년 사간이 된 뒤, 상의원정(尙衣院正)·사인·응교·전한·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1618년 대비삭호(大妃削號)를 포함한 폐모론이 재론되었을 때, 아버지 창연이 두문불출하여 정청(庭請)에 불참, 화를 입을 지경에 이르자 아버지를 위하여 대신 참가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때 사간에 임명되자, 과거의 정청참여를 자책하여 간관으로서 자격이 없음을 스스로 지적, 사퇴하고자 하였으나 왕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괄(李适)의 난 때 형 정광성은 아버지를 모시고 그는 어가(御駕)를 호종하였으며, 정묘호란 때는 형이 임금을 따르고 자신이 아버지를 모심으로써 형제가 군부(君父)에 대한 충효를 함께 실천하였다 하여 칭송을 받았다. 그뒤 예조참의·충청도관찰사·대사헌·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대사간·이조참판 등을 지냈다.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청선고(淸選考)』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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