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내성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종묘서령, 병조참판, 한성부좌윤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기서(岐瑞)
  • 사헌(思軒)
인물/전통 인물
  • 본관청주(淸州)
  • 사망 연도1835년(헌종 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병조참판|한성부좌윤
  • 출생 연도1744년(영조 20)
  • 출생지안동(安東)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호종 (안동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사헌문집 미디어 정보

사헌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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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종묘서령, 병조참판, 한성부좌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기서(岐瑞), 호는 사헌(思軒). 안동 출신. 정태두(鄭泰斗)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천상(鄭天相)이고, 아버지는 증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 추증된 정중섭(鄭重燮)이며, 어머니는 권만원(權萬元)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80년(정조 4)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벼슬길에 올라서는 전적과 좌랑이 되었는데, 그는 벼슬살이를 하면서도 여가가 있으면 언제나 문을 닫아놓고 책읽기를 좋아하였다. 1785년 전라도도사에 제수되었으나 어버이가 연로하였으므로 사양하고 고향에 내려가 인근 마을의 자제들을 불러모아 경서를 강의하였다.

그 뒤 다시 장악원주부(掌樂院主簿)와 종묘서령(宗廟署令) 등을 지내다가 1800년에 사직하고 귀향하여 부모상을 치렀다. 그 뒤 다시 병조참판·한성부좌윤 등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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