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

고대사
인물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청해진대사 장보고 휘하의 관리. 장군.
이칭
이칭
정련(鄭連)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주요 관직
무령군 장교
관련 사건
왕위계승
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청해진대사 장보고 휘하의 관리. 장군.
개설

일명 정련(鄭連). 남해안 해변지역의 평민 출신으로 추정된다. 장보고(張保皐)와 동향인으로서 무예에 뛰어났고 물길질에 능하였다. 젊었을 때 장보고와 함께 중국에 건너가 당나라의 무령군(武寧軍)의 장교로 복무하였다. 이후 정년의 행적에 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신당서』 신라전과 그것을 전재한 『삼국사기』 열전에서는 장보고에 이어서 청해진의 진장이 되었다고 하였으나, 그것은 와전된 것으로서 사실과 다르다.

생애와 활동사항

장보고가 신라로 귀국한 뒤에도 정년은 계속 당나라에 머물러 있었는데, 뒤에 관직을 잃고 빈곤에 시달렸다. 그래서 먼저 귀국하여 청해진(淸海鎭)을 건설하여 위세를 떨치고 있던 장보고의 휘하에 투신하였다. 장보고와는 일찍이 서로 무예의 우열을 다투며 경쟁하던 사이로서, 두 사람 사이에는 우정과 함께 서로 시기하고 의심하는 감정이 개재되어 있어 두 사람의 관계는 순탄하지 않았다. 그런데 장보고가 흔쾌히 그를 받아들이고 중용하자, 두 사람의 우정에 대한 칭송이 자자하게 되었다.

당시 청해진에는 836년(희강왕 1) 수도에서 벌어진 왕위계승분쟁에서 패배한 김우징(金祐徵) 일파가 피신해와 장보고에게 의탁하고 있었다. 왕위계승전에서 승리하여 즉위한 희강왕이 다시 838년(민애왕 1) 피살되고 민애왕이 즉위하자, 김우징은 반격을 시도하였다. 이에 장보고는 휘하의 군대 5,000명을 일으켜 정년 등에게 맡겨, 김우징·김양(金陽) 등과 함께 수도로 진군하게 하였다. 정년 등은 무주(武州)철야현(鐵冶縣)에서 중앙군을 격파하고 이어 달구벌(達丘伐 : 지금의 대구)에서 김흔(金昕)이 이끈 민애왕군을 대파하고 수도로 진군해 들어가, 김우징을 신무왕으로 즉위하게 하였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당서(新唐書)』
집필자
노태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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