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년 ()

여주 정대년 신도비각 전경
여주 정대년 신도비각 전경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형조참판, 한성부판윤, 호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경로(景老)
사암(思菴)
시호
충정(忠貞)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03년(연산군 9)
사망 연도
1578년(선조 11)
본관
동래(東萊)
주요 관직
이조판서|집의(執義)|대사헌
정의
조선 전기에, 형조참판, 한성부판윤, 호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경로(景老), 호는 사암(思菴). 증호조참판 정비(鄭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호조판서 정원운(鄭元耘)이고, 아버지는 예문관대교 정전(鄭荃)이며, 어머니는 거창신씨(居昌愼氏)로 증 이조판서 신극정(愼克正)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31년(중종 26) 사마시에 합격하고 1532년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 관직이 예빈시주부를 거쳐 지평(持平)·장령(掌令)·부교리(副校理)·집의(執義)·직제학에 이르렀다. 1542년 감찰로서 정조사(正朝使)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이듬해 부제학이 되고, 우승지 등을 거쳐 명종 때 황해도관찰사·형조참의·병조참의·경기도관찰사·호조참판·한성부우윤·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선조 때 형조참판·한성부판윤·호조판서를 지내고, 1572년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청백리(淸白吏)로서, 권신 윤원형(尹元衡)이 자신의 정처를 내쫓고 애첩 정난정(鄭蘭貞)으로 정경부인(貞敬夫人: 외명부 종1품)을 삼은 데 대한 사실 여부를 밝히라는 왕명을 받들고 조사하던 중 윤원형이 이를 알고 뇌물로 이를 무마하려 하자 완강히 거절하여 사람들이 후사(後事)를 두려워한 일도 있었다.

선조 초에 육조의 장을 추천하라는 왕명이 있자 모두가 서슴없이 그를 추천할 만큼 명망이 있었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참고문헌

『중종실록(中宗實錄)』
『명종실록(明宗實錄)』
『선조실록(宣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백주집(白洲集)』
『소재집(蘇齋集)』
『이암유고((頤庵遺稿)』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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