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형조참판, 한성부판윤, 호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이듬해 부제학이 되고, 우승지 등을 거쳐 명종 때 황해도관찰사·형조참의·병조참의·경기도관찰사·호조참판·한성부우윤·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선조 때 형조참판·한성부판윤·호조판서를 지내고, 1572년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청백리(淸白吏)로서, 권신 윤원형(尹元衡)이 자신의 정처를 내쫓고 애첩 정난정(鄭蘭貞)으로 정경부인(貞敬夫人: 외명부 종1품)을 삼은 데 대한 사실 여부를 밝히라는 왕명을 받들고 조사하던 중 윤원형이 이를 알고 뇌물로 이를 무마하려 하자 완강히 거절하여 사람들이 후사(後事)를 두려워한 일도 있었다.
선조 초에 육조의 장을 추천하라는 왕명이 있자 모두가 서슴없이 그를 추천할 만큼 명망이 있었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명종실록(明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백주집(白洲集)』
- 『소재집(蘇齋集)』
- 『이암유고((頤庵遺稿)』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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