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나주(羅州). 호는 우향(又香)·금성(錦城). 괴석(怪石)과 난죽(蘭竹) 그림으로 유명하였던 학교(學敎)의 아들이며, 작은아버지 학수(學秀)도 화가였다.
우향이라는 호는 아버지의 호인 향수(香壽)에서 ‘향’을 취하여 ‘또 향’이라는 뜻을 지닌다. 관직으로는 외부주사(外部主事)와 통상국장을 거쳐 1906년에 농상공부 상무국장을 역임하였다.
1911년에 서화미술회(書畫美術會) 강습소가 개설되자 조석진(趙錫晉)·안중식(安中植) 등과 함께 교수진으로 가담하여 글씨와 문인화법을 가르쳤다. 1918년에 서화협회(書畫協會)가 창립될 때 13명의 발기인 중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
1921년에는 3대회장에 추대되어 첫 서화협회전람회를 개최하였다. 1922년 조선총독부 주관의 제1회조선미술전람회에서는 ‘서(書)와 사군자(四君子)’부 심사위원을 지냈다.
그의 글씨는 예서(隷書)와 행서(行書)가 고격(古格)하고, 그림에서는 간결한 필치에 맑은 담채가 곁들여지는 매화와 괴석을 즐겨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