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해방 이후 「남해안별신굿」의 전승자로 지정된 기예능보유자.
개설
생애와 활동사항
41세 때 젓대의 명수 김성오와 재혼한 뒤, 1970년대에 이르러 무굿에 대한 기예능이 최고의 완숙기에 들었으며, 당시 2, 3명 밖에 남지 않은 대모(큰 무당)격 사제무 중에서도 1인자의 위치에 있었다.
별신굿에서 하늘거리는 부채를 들고 가볍게 팔을 흔들며 추는 춤은 나비의 날게짓처럼 유연하며, 노래 역시 맑고 부드러운 음색으로 고음 · 저음을 뛰어나게 조화시키며 사제하는 모습은 그녀가 무굿에서 가무(歌舞)의 높은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남해안별신굿의 굿거리 중에 큰굿이라고 하는 손굿은 그 중 어렵고 중요한 거리인데 정모연만이 완벽하게 해내는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또한 무가(巫歌) 사설에 대한 발음이 정확하여 관객이 굿내용을 잘 이해하고 일체감을 가지게 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다.
사망하기 전까지 거의 60년 동안 세습무로서 계속하여 무업에 종사해왔다. 날씬한 몸매에 갸름한 얼굴로 미인형이며 죽기 전까지 통영시 도천동에서 거주하였다. 날씬한 몸매에 갸름한 얼굴로 미인형이며 죽기 전까지 통영시 도천동에서 거주하였다. 현재 남해안별신굿은 그의 손자뻘되는 정영만이 예능보유자로 뒤를 잇고 있다.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