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삼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도승지, 호조참판, 예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명여(命汝)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90년(숙종 16)
사망 연도
1729년(영조 5)
본관
동래(東萊)
주요 관직
예조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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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도승지, 호조참판, 예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명여(命汝). 정태화(鄭太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재대(鄭載岱)이고, 아버지는 정혁선(鄭赫先)이며, 어머니는 이영(李泳)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11년(숙종 37)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으나 회강(會講)시 그의 이름이 누설되었다는 수찬 홍중휴(洪重休)의 상소에 의하여 3년간 관직에 임용되지 못하였다. 1717년 좌랑으로 춘추관을 겸하였으나 곧 파직되었다.

1718년에는 병조정랑으로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사과를 거쳐, 1722년(경종 2) 사간이 되었다. 이 때 공론(公論)에서 죄를 얻었다 하는 사간원의 탄핵으로 파직당하였다. 1724년(영조 즉위년)에 다시 사간에 임용되었으며, 이 후 승지·사과 등을 역임하였다.

이듬해 영조의 즉위과정에 있어서 그의 처신이 문제가 되어 삼사의 탄핵을 받아 삭탈관작·문외출송(門外黜送)되었다. 1727년 승지에 특별 임용되어 형조참판·도승지·호조참판·예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이 기간 동안 그는 탕평책의 한 방법으로 전선(銓選)의 바른 시행을 논하였으며,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청나라에 파견되기도 하였다. 1772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경종실록(景宗實錄)』
『영조실록(英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청선고(淸選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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