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태완(台完), 호는 난파(蘭坡). 아버지는 참봉 정찬기(鄭讚基)이며, 어머니는 해주최씨(海州崔氏) 최사륜(崔師崙)의 딸이다. 외모가 웅위(雄偉)하고 지기(志氣)가 원대하였다. 오계수(吳繼洙)에게 사사하였다.
1893년(고종 30)에 큰 흉년이 드니 가산을 털어 빈민을 구제하였고,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 동학도들이 나주로 쳐들어오니 목사 민종렬(閔種烈)의 천거로 도통장(都統將)이 되어 여덟 달 동안을 방어하면서 전후 여섯 번이나 승전을 거두어 나주를 끝내 방어하였다.
그 공으로 난이 평정된 후 해남(海南) 군수에 특제되었다. 1895년 8월 20일에 일본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하자 정석진은 벼슬을 버리고 기우만(奇宇萬) 등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켜 국모의 원수를 갚고자 하였다. 그러나 뜻을 이루기도 전에 그 다음해인 1896년 3월 11일 서울에서 내려온 관군(대장은 金炳旭)에게 패하여 생포되었다가 김병욱에게 죽임을 당했다.
당시의 많은 인사들이 이를 원통히 여겨 시와 문으로 애도하였다. 그 다음 해 신원(伸寃: 원통한 일을 풀어 버림)되었다. 저서로는 『난파집(蘭坡集)』 1권이 있다.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