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철산(鐵山). 1791년(정조 15) 4월 관서무사(關西武士)로서 백인철(白仁哲)·정경행(鄭敬行) 등과 함께 초관(哨官)으로 임명되었다.
1811년(순조 11) 본래 평안도 용강(龍岡)의 지사(地師)였던 홍경래(洪景來)가 가산(嘉山)의 지사 우군칙(禹君則), 곽산(郭山)의 진사 김창시(金昌始) 등과 함께 난을 일으켰을 때 그도 이에 참여하여 계책을 제시하고 군량부족을 해결하기 위하여 부민(富民)들로부터 쌀을 거두어들이는 등의 활약을 하다가 이듬해 12월 체포되어 모반대역죄인으로 복주(伏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