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일(延日). 예문관제학 정해륜(鄭海崙)의 아들이다.
1883년(고종 20) 진사로 성균관에서 학업을 닦던 중 춘도기(春到記)에 시로써 수석을 차지하여 곧바로 전시에 나아갈 자격을 얻고, 곧이어 임오군란으로 1년 미루어져 이해에 실시된 식년문과에 급제, 관로에 나아갔다.
세자시강원과 홍문관·예문관의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1889년 한림소시(翰林召試)에 합격하였다. 다시 세자시강원 겸 필선을 지낸 뒤 1890년 성균관대사성에 제수되었다. 이듬해에는 증광감시의 시관을 맡았고, 우부승지에 제수되었다.
1894년 이조참의가 되었으며, 1897년 비서승(秘書丞)으로서 명성황후(明成皇后) 국상 과정에서 쏟은 노고를 인정받아 이듬해 중추원1등의관으로 승진하였고, 칙임관4등이 서하되었다.
안동군수로 재임 중이던 1899년 평안남도관찰사로 전임되어 1년 뒤 임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으나, 업적이 좋지 못하여 징계를 받았다가 곧 특별히 징계를 면제하라는 왕명이 내려졌다. 1901년부터 1902년까지는 종2품의 지위에 있으면서 주로 궁내부특진관으로서 관직생활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