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사 ()

목차
관련 정보
강진 정수사
강진 정수사
불교
유적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천개산(天蓋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창건된 사찰.
이칭
이칭
쌍계사(雙溪寺)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천개산(天蓋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창건된 사찰.
내용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이다. 구군지(舊郡誌)에 의하면, 805년(애장왕 6)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도선은 827년(흥덕왕 2) 영암(靈巖)에서 출생하였고, 842년 승려가 되었으므로 그 연대에는 다소의 착오가 있는 듯하다.

창건 당시에는 이곳의 계곡을 중심으로 양쪽 언덕에 묘적사(妙寂寺)와 쌍계사(雙溪寺)의 두 사찰을 건립하여 묘적사에는 천불상(千佛像)을 봉안하였으나 중세에 이르러 화재로 소실되었고, 쌍계사는 수정사(水淨寺)로 이름을 바꾸었다. 한동안 폐허가 되었던 것을 1529년(중종 24) 중창하면서 정수사라 하였고, 1574년(선조 7) 성운(性雲)이 중건하였다. 그 뒤 정유재란으로 대파된 것을 1644년(인조 22)에 종인(宗印)이 현감 강유(姜諭)의 시주로 중건하였고, 1664년(현종 5)에는 능우(能佑)가 중수하였다.

1706년(숙종 32) 처사(處士) 이득종(李得宗)이 당시의 현감이었던 김중려(金重呂)의 협력을 얻어 중수하였고, 1794년(정조 18) 왕명으로 고금도(古今島)에 있는 관왕묘(關王廟)를 이 절에서 관리하게 되었다. 조선말까지만 하여도 강진의 사암(寺庵)들을 관장하는 수찰(首刹)이었으나 차츰 퇴락하다가 6·25 이후 공비들에 의하여 소실되었으며, 뒤에 사찰 승려들이 지방민의 협조를 얻어 중건하였다. 1991년에는 요사를 지었고, 1995년에는 사사자석탑(四獅子石塔)을 조성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1985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대웅전과 나한전 · 산신각 · 종각 · 산문(山門), 요사채 등이 있고, 대웅전 안에는 2014년 보물로 지정된 강진 정수사 석가여래삼불좌상이 봉안되었다. 산문 밖은 임진왜란의 격전지로 유명하며, 남쪽으로 3㎞ 떨어진 곳에는 고려청자 도요지인 당전리가 있다.

참고문헌

『강진군지(康津郡誌)』
『전통사찰총서』6(사찰문화연구원, 1996)
『강진향토기』(강진군, 1978)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