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장례원판결사, 첨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부인은 판관 심원(沈湲)의 딸(초취)과 의정부사인 남윤종(南潤宗)의 딸(계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군수 재임 중인 1510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1512년 상의원정(尙衣院正) 재직 중에 이조판서 송질(宋軼)의 천거로 승지에 주의(注擬)되었다. 그러나 고부군수로 있을 때 송질의 청을 들어주어 관둔전의 사취를 방조하고, 관곡으로 파종시켜 준 것과 관련되어 천거하였음이 드러나면서 파직되었다.
1515년 3월에 은계찰방으로 복직되었으나 대간의 반대로 부임하지 못하였다. 그 뒤 서용되어 사재감정(司宰監正)·사도시정(司䆃寺正)·통례원우통례·원주목사와 승문원의 참교(參校), 판교 겸 춘추관수찬관(判校兼春秋館修撰官) 등을 역임하였다.
1523년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르면서 광주목사(光州牧使)로 나갔고, 이듬해 장례원판결사로 입조, 곧 첨지중추부사에 개수(改授)되었다. 성품이 근검하고 관후하였으며, 교유를 삼가고 학문에 증진하여 자못 성취가 있었다.
참고문헌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중종실록(中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모재집(慕齋集)』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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