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조 ()

근대사
인물
개항기 때, 사헌부대사헌, 한성부판윤,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화중(華仲)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10년(순조 10)
사망 연도
미상
본관
동래(東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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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개항기 때, 사헌부대사헌, 한성부판윤,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화중(華仲). 정기정(鄭基鼎)의 아들로 정기상(鄭基常)에게 입양되었으며, 어머니는 청주한씨(淸州韓氏)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64년(고종 1)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당상관으로 승진하였다.

과거에 급제하기 직전인 1864년 봄에는 충주목사로서 관할지역에 책정된 대동미(大同米)·태(太)를 다 거두면 큰 민폐가 된다는 보고를 충청도관찰사를 통하여 올린 바 있다.

과거에 급제한 뒤 4차례에 걸쳐 사간원대사간을 역임하였고, 남양도호부사로 부임하여 치적을 올렸으며, 1870년 경기관찰사가 이를 보고함으로써 승진되었다. 1873년 이조참판을 지낸 뒤 성균관대사성에 제수되었고, 1876년 이후 여러 차례 사헌부대사헌을 지냈다.

1883년 공조판서와 한성부판윤, 1884년 예조판서, 1885년에는 이조판서에 제수되었는데, 수령으로서 치적을 올린 업적과 이조 등 여러 중앙행정부서의 장관을 역임한 경력에서 행정능력이 탁월하였음을 가늠할 수 있다.

사헌부대사헌에 7차례, 사간원대사간에 6차례 임명되어 모두 13차에 걸쳐 법사(法司)의 장관을 맡아보았던 인물이다.

참고문헌

『고종실록(高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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