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전기에, 벽송 지엄에게 선법을 전하고 태고 법통의 적전 계보를 이은 승려.
가계 및 인적사항
주요 활동
법통과 평가
1764년에 편찬된 『해동불조원류(海東佛祖源流)』에서는 “벽계 정심은 구곡 각운을 멀리 이었고, 다시 명나라에 들어가 임제종 총통 화상(摠統和尙)의 법을 전해 왔다. 선은 지엄에게, 교는 정련에게 전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정심이 명에 가서 임제 법맥을 전수해 왔다는 기록은 다른 자료에서는 전혀 확인되지 않아 신빙성이 떨어진다. 고려 공양왕이 물러난 후, 정심은 승려 사태로 머리를 기르고 처자식을 두었으며, 황악산(黃岳山)에 들어가 고자동(古紫洞) 물한리(物罕里)에 은거하다 자취를 감추었다. 조선의 억불 정책으로 인해 그가 결국 환속했다고 보고 있다. 조선시대 불교 측 자료에서는 승려 사태를 폐군인 연산군 때의 일로 보기도 한다.
참고문헌
원전
- 『대각등계집(大覺登階集)』
- 『삼로행적(三老行蹟)』
- 『청허당집(淸虛堂集)』
- 『해동불조원류(海東佛祖源流)』
단행본
- 김용태, 『조선 후기 불교사 연구』(신구문화사, 2010)
- 이능화, 『조선 불교 통사』(신문관, 1918)
주석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