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에 활동했던 사암 채영은 편양 언기(鞭羊彦機, 1581∼1644)의 편양파 법맥을 이은 월저 도안(月渚道安)의 후손이며, 금파 행우(錦波幸祐)의 제자이다. 사암 채영의 구체적인 생몰년도 및 활동 사항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사암 채영은 『서역중화해동불조원류』 발문에서 국초(國初) 이래 명승들의 유풍과 법맥 전승 기록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것이 아쉬워 이 책을 내게 되었다고 밝힌다. 채영은 1762년 봄부터 각지의 사찰을 찾아다니며 명승들의 유풍 및 법맥과 관련된 자료를 모았다. 2년 뒤인 1764년 여름, 채영은 전주 송광사에 모인 여러 문파 고승들의 공론을 수렴하여 본서를 간행하였다. 그러나 부휴계의 벽담 행인(碧潭幸仁)이 책의 내용에 불만을 품고 전주 송광사의 판목을 불태운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불교사에 대한 계파별 인식의 차이, 서술 비중의 형평성 등이 사건의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역중화해동불조원류』의 처음에는 당나라 왕발(王勃)이 쓴 부처의 일대기 「석가여래성도응화사적기실(釋迦如來成道應化事蹟記實)」이 실려 있다. 본문에는 석가모니불 이전에 존재했던 과거 7불(七佛), 염화미소로 이심전심의 선법(禪法)을 전해받았다는 마하가섭(摩訶迦葉) 이후 인도의 서천조사(西天祖師), 초조 보리달마(菩提達磨)로부터 6조 혜능(慧能)을 거쳐 선종 5가 가운데 중화조사(中華祖師)를 임제종(臨濟宗)의 주요 계보로 올렸다. 마지막에는 임제 18세인 석옥 청공(石屋淸珙)과 평산 처림(平山處林)이 기재되었는데, 고려의 태고 보우와 나옹 혜근(懶翁惠勤은 이들로로부터 중국 임제종의 정통 법맥을 전수받았다고 기재하였다. 이어서 책의 주요 내용인 해동원류(海東源流)를 서술하였다. 「해동선파정전도(海東禪派正傳圖)」, 삼국과 고려의 조사(祖師), 「조계산십육조사(曹溪山十六祖師)」, 「지공행적(指空行蹟)」, 「묘엄존자탑명병서(妙巖尊者塔銘幷序)」, 「무사별록(無嗣別錄)」이 순서대로 실려 있다.
마지막으로 채영이 쓴 「후발(後跋)」과 간기(刊記)가 나온다.
『서역중화해동불조원류』는 중국 선종 임제종(臨濟宗)의 정통 법맥을 고려 말 ‘해동 정맥 제1조’인 태고 보우가 전수받았고 그 계보가 환암 혼수(幻庵混修) - 구곡 각운(龜谷覺雲) - 벽계 정심(碧溪淨心) - 벽송 지엄(碧松智嚴)- 부용 영관(芙蓉靈觀)을 거쳐 청허 휴정과 부휴 선수로 계승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계보는 중국 임제종의 법맥이 후대까지 이어졌다는 불교사적 인식을 담고 있다. 이 책에 정리된 임제종의 정통 법맥은 17세기 전반 편양 언기의 주도로 공론화된 임제태고법통을 충실히 반영한 것이다. 즉 『서역중화해동불조원류』는 임제태고법통에 기반해 18세기 중반까지의 조선 불교의 계파 및 주요 문파의 법맥을 집약해 놓은 책이다.
휴정의 청허계는 사명파(四溟派), 소요파(逍遙派), 정관파(靜觀派), 편양파(鞭羊派)의 4대 문파로 나뉘어 전해졌고, 부휴계는 선수의 수제자 벽암 각성(碧巖覺性) 이후 취미 수초(翠微守初) - 백암 성총(栢庵性聰)으로 이어지는 비교적 단일한 계보로 이어졌다. 『서역중화해동불조원류』에서 집성된 조선 후기의 법맥은 휴정과 선수 이후 18세기 중반까지 보통 7~9세, 많으면 10세까지의 문파별 사승 관계를 나열하였다. 저자 채영이 속한 편양파의 서술 비중이 가장 커서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조선 후기에 편양파의 세력이 가장 컸던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해동선파정전도」에는 편양파와 함께 소요 태능(逍遙太能, 1562~1649)을 개조로 한 소요파의 계보도 간략히 기재되어 있다.
『서역중화해동불조원류』는 조선 후기 불교계의 공식 법통인 임제태고법통에 기반해 청허계 4대 문파와 부휴계의 법맥을 정리하여 수록한 불교 사서이다. 이 책을 통해 18세기까지의 법통 인식과 법맥 사승 관계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서역중화해동불조원류』의 자료적 가치는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