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시대, 원암사 승려들이 창건한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종남산(終南山)에 위치한 사찰.
창건
1631년(인조 9) 대웅전 상량식을 거행하고, 1638년(인조 16) 후불탱을 조성하였다. 1640년(인조 18) 시왕전이 완성되었으며, 1641년(인조 19) 대웅전 삼존불을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이 무렵 병자호란 의승장 벽암 각성(1575~1660)이 1640년에 조정으로부터 적상산성(赤裳山城)의 임무를 명령받자 송광사 승려들은 전라도 감영(監營)을 찾아가 각성이 송광사에 머물 수 있도록 요청하여 성사시키고, 1641년 법당의 본존 삼존불을 봉안한 후 낙성식을 거행하고 사찰명을 ‘송광사’라고 하였다. 송광사 승려들과 각성은 창건을 기념하며 50일 동안 화엄 대회를 개최하였는데 전국에서 천 명이 넘는 승려들이 모여들었다. 이후 「송광사개창비」를 세웠다. 비문은 동양위 신익성(1588~1654)이 짓고, 의창군 이광(1589~1645)이 글씨를 썼다.
부휴계와 청허계의 공존 사찰
송광사의 개창 과정에서 각성이 주석한 이래 그의 문도들이 송광사의 경영을 주도하면서 송광사는 부휴계의 사찰이 되었다. 그런데 송광사에서 출가한 무경 자수(1664~1737)가 젊은 시절에 경상북도 김천 불영산에 주석하고 있던 부휴계의 모운 진언(1622~1703)에게 『화엄경』과 『대승기신론』 등을 배웠지만, 30세가 되던 해에 송광사 근처 추줄산 운문사에 주석하고 있던 청허계의 추계 유문(1614~1689)에게 가르침을 받고 그의 법맥을 이었다. 자수는 유문이 입적하자 송광사에 그의 승탑을 세우는 등 청허계 법맥을 현창하는데 적극적이었다. 이로써 송광사는 청허계와 부휴계가 공존하는 사찰로 이어졌다.
한편, 1764년(영조 40)에 송광사에서 사암 채영(獅巖采永)이 여러 산문의 승려들을 초청하여 의견을 듣고 계파의 법맥을 정리하여 『서역중화해동불조원류(西域中華海東佛祖源流)』를 간행하여 배포하였다. 여기에는 청허계가 2,522인, 부휴계가 614인으로 전체 3,136인이 수록되었다. 그런데 부휴계의 벽담 행인(碧潭幸仁)이 청허계가 중심이 되고 부휴계가 소홀하게 다루어졌다고 비판하며 완주 송광사로 찾아와 판목을 불태우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판목 전체를 불태우지는 못한 것 같다. 현재 일부 판목이 남아 있다.
18세기 송광사의 규모
중건 불사
1649년(인조 27)에 천왕문과 소조사천왕상, 1656년(효종 7)에 목조 석가여래삼존좌상, 나한전과 오백나한상, 금강문 등을 조성하였다. 그리고 1717년(숙종 43)에 연화당(蓮花堂)이 화재로 소실되었지만 1725년(영조 1)에 재건하였고, 1813년(순조 13) 관음전을 중수하였으며, 1814년(순조 14) 약사전을 중수하였다.
원암사와 송광사의 불서 간행
중요문화재
전라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는 명부전 소조지장보살삼존상 및 권속상 일괄, 나한전, 오백나한상 일괄, 금강문, 일주문, 송광사사적비, 목조삼전패가 있고, 1716년(숙종 42) 무등산 증심사에서 제작한 동종이 있다. 전라북도 문화유산자료로는 벽암당부도가 있다.
참고문헌
원전
- 권상로, 『한국사찰전서(韓國寺刹全書)』 (동국대학교 출판부, 1979)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단행본
- 『문화유적총람』 (문화재관리국, 1978)
논문
- 유근자, 「17세기의 완주 송광사 불사와 벽암 각성」 (『남도문화연구』 36, 2019)
- 최연식, 「완주 송광사의 창건 배경 및 조선후기 불교 문파와의 관계」 (『보조사상』 47, 2017)
- 한지만, 「조선 후기 선종사원 완주 송광사 가람구성의 의미」 (『보조사상』 47, 2017)
인터넷 자료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https://kabc.dongguk.edu)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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