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 보리암

  • 종교·철학
  • 유적
  • 남북국
  • 고려 후기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금산(錦山) 남쪽 봉우리에 있는 관세음보살 기도처로 유명한 암자.
이칭
  • 이칭보광사(普光寺)
유적/건물
  • 소재지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금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3년
  • 이종수 (순천대학교 사학과 교수, 조선불교사)
  • 최종수정 2024년 11월 20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보리암은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금산(錦山) 남쪽 봉우리에 있는 관세음보살 기도처로 유명한 암자이다. 창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삼층석탑이 전해 온다. 신라시대 원효가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수행했다는 설화와 태조 이성계가 산 아래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정의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금산(錦山) 남쪽 봉우리에 있는 관세음보살 기도처로 유명한 암자.

역사적 변천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雙磎寺)의 말사이다.

683년(신문왕 3)에 원효(元曉)가 이곳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 산 이름을 보광산(普光山)이라 하고 초암의 이름을 보광사(普光寺)라 하였다고 전하지만 역사적 신빙성은 거의 없다. 다만 산 이름과 관련하여 <남해금산영응기적비(南海錦山靈應紀蹟碑)>에서, 태조 이성계가 보광산 아래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으며, 왕위에 오른 후 산이 비단으로 둘러쳐져 있는 것 같다고 하여 산 이름을 ‘금산’으로 고쳤다고 하였다.

보리암에는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보리암전 삼층석탑>이 전해 온다. 이 탑과 관련하여, 허황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사리를 원효대사가 이곳에 모셔 두었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 온다.

1481년(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서는 “보리암(菩提庵), 상도솔암(上兜率庵), 중도솔암(中兜率庵) 모두 금산에 있으며 남쪽 바다를 굽어본다.”라고 하였다. 17세기에는 미수 허목(1595~1682)의 <범해록(泛海錄)>에서 “산꼭대기에서 남쪽으로 석벽을 타고 내려와 보리암에서 휴식하였다.”라고 하였다. 1859년(철종 10)에 금산 아래에 ‘전패(殿牌)’를 봉안하였다가 후대에 보리암으로 옮겼으며, 1898년(광무 2)에 다시 남해 용문사로 옮겼다. 1901년에 낙서(樂西)와 신욱(信昱)이 중수하였고, 1954년에 동파(東波)가 중수하였으며, 1969년에는 주지 양소황(梁素滉)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광전(普光殿)을 비롯하여 간성각(看星閣) · 산신각 · 범종각 · 요사채 등이 있다.강원 양양군 낙산사 홍련암, 경기 강화도 보문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관음 기도처의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금산 일대는 2008년에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중요 문화유산

보리암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2점이 소장되어 있는데, 고려시대에 조성된 <삼층석탑>과 17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되는 <목조관음보살좌상 불감>이다.

참고문헌

  • 원전

  •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 『조선사찰사료(朝鮮寺刹史料)』 (조선총독부, 1911)

  • 단행본

  • - 이고운, 박설산, 『명산고찰 따라』 (신문출판사, 1987)

주석

  • 주1

    : 불교의 한 종파의 우두머리인 큰절의 관리를 받는 작은 절. 또는 큰절에서 갈라져 나온 절. 우리말샘

  • 주2

    : 억새나 짚 따위로 지붕을 인 조그마한 집채. 흔히 집의 몸채에서 따로 떨어진 곳에 지었다. 우리말샘

  • 주3

    : 갈대나 짚, 풀 따위로 지붕을 엮은 암자. 우리말샘

  • 주4

    : 건축물 따위의 낡고 헌 것을 손질하며 고치다. 우리말샘

  • 주5

    : 절이나 왕궁 따위를 보수하거나 고쳐 짓다. 우리말샘

  • 주6

    : 정당(正堂)과 옥우(屋宇)라는 뜻으로, 규모가 큰 집과 작은 집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 주7

    : 절에 있는 승려들이 거처하는 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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