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 홍련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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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양양 낙산사 홍련암 전경
양양 낙산사 홍련암 전경
불교
유적
국가유산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낙산(駱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의상이 창건한 암자. 낙산사.
시도문화유산
지정 명칭
낙산사홍련암(洛山寺紅蓮庵)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사찰
지정기관
강원특별자치도
종목
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1984년 06월 02일 지정)
소재지
강원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 산5-2번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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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낙산(駱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의상이 창건한 암자. 낙산사.
내용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소속인 낙산사의 부속암자이다. 낙산사 의상대(義湘臺) 북쪽 300m 지점에 있다.

672년(문무왕 12) 의상(義湘)이 관음보살의 진신(眞身)을 친견하고 대나무가 솟은 곳에 지은 불전(佛殿)이라 한다. 또, 일설에는 의상이 이곳을 참배할 때 푸른 새를 만났는데 새가 석굴 속으로 자취를 감추자 이상히 여겨 굴 앞에서 밤낮으로 7일 동안 기도를 하였다. 7일 후 바다 위에 홍련(紅蓮)이 솟아 그 가운데 관음보살이 현신하였으므로 이 암자 이름을 홍련암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바닷가 암석굴 위에 자리 잡은 이 암자의 법당 마루 밑을 통하여 출렁이는 바닷물을 볼 수 있도록 지어졌다. 의상에게 여의주(如意珠)를 바친 용이 불법을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하여 이와 같이 지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구조를 가졌던 감은사지(感恩寺址)의 법당은 죽어서 용이 된 문무왕이 출입할 수 있도록 역시 법당 밑에 바닷물이 통하도록 하였다. 신라 및 고려시대의 중창의 역사는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임진왜란 이후인 1752년(영조 28) 덕린(德麟)이 중수하였고, 1797년(정조 21) 혜근(慧勤)이 중수하였으며, 1802년(순조 2) 청호(晴湖) · 흥운(興雲)이 중수하였다. 1975년 원철(園哲)이 중창하여 옛 모습을 복원하였다.

홍련암은 1984년 강원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으며 당우로는 관음전과 요사채가 있다. 사리탑은 1971년 강원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근처의 해안에는 보기 드문 석간수가 있는데, 이 샘은 원효(元曉)가 양양의 영혈사(靈穴寺) 샘물을 석장(錫杖)에 담아 끌어왔다는 설화가 전한다.

참고문헌

『삼국유사(三國遺事)』
『한국사찰전서』(권상로 편,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집필자
박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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