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보현사는 혜감국사 만항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읍지에서 고려 말 민지가 왕명으로 보현사 기문을 지었다고 서술하고 있지만 그 문헌이 전하지 않아 확인할 수 없다. 언제 폐사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1931년 이봉기가 중창하였다.
정의
고려 후기 승려 만항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소재의 사찰.
역사적 변천
보현사는 마행산(馬行山)에 있다. 1306년(충렬왕 32)에 혜감국사 만항(1249~1319)이 작은 암자에 머물다가 꿈에서 평생 수도할 곳의 계시를 받고 절을 지어 1313년(충선왕 5)에 완공했다. 1318년(충숙왕 5)에 민지(1248~1326)가 왕명으로 보현사의 기문을 지었다. 그리고 1692년(숙종 18)에 처능(處能)이 선당을 중수할 때 옛날 상량문에서 “1308년(충렬왕 34) 7월 20일에 중창하다”라는 글이 발견되었다. 소속 암자로 남암(南庵), 동암(東庵), 상대암[上臺庵](다른 이름으로 비금암(飛金庵)이라고도 함)이 있다. 새로 짓거나 증축한 건물로 법당, 시왕전(十王殿), 나한전, 정루(正樓), 승당, 선당(禪堂), 서상실(西上室), 약사전, 문수전, 만월당, 조사전이 있다.
위의 내용에서 창건주로 언급된 만항은 송광사 16국사 중 제10대 국사이며, 시호는 혜감(慧鑑)이고 탑호는 광조(廣照)이다. 그와 관련된 기록에서 보현사가 보이지 않으므로 만항이 보현사를 창건했다는 이야기를 증명할 길이 없으며, 민지의 글 역시 남아 있지 않으므로 고증하지 못한다.
1481년(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 위에서 언급한 『용성지』, 1799년(정조 23)에 편찬된 『범우고』에 사찰명이 ‘보현사(寶賢寺)’로 기록되어 있다. 명칭에서 한자가 다르긴 하지만 같은 사찰로 볼 수 있으므로 보현사가 조선 후기까지 존속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 보현사가 언제 폐사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1931년 이봉기가 중창하였고 1973년에는 법당과 요사를 지었다.
1991년 태고종 승려 정봉이 이봉기로부터 절을 인수 받았다. 이후 정봉이 사망하자 부인인 경환이 정봉의 뒤를 이어 절의 주지를 맡았다.
참고문헌
원전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범우고(梵宇攷)』
- 『용성지(龍城誌)』
단행본
- 권상로 편, 『한국사찰전서(韓國寺刹全書)』(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 『남원지』(남원지편찬위원회, 1992)
인터넷 자료
-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남원문화대전(http://namwon.grandculture.net/namwon)
주석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