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성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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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학자, 방두천이 전라남도 남원군(현 남원시)의 연혁 · 인문지리 · 행정 등을 수록하여 1752년경에 편찬한 사찬 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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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의 학자, 방두천이 전라남도 남원군(현 남원시)의 연혁 · 인문지리 · 행정 등을 수록하여 1752년경에 편찬한 사찬 읍지.
내용

7권 2책. 필사본. 건(乾), 곤(坤) 2책으로 나누어져 있다.

내용 구성은 건치연혁(建置沿革)·군명(郡名)·강계(疆界)·방명(坊名)·성씨(姓氏)·풍속(風俗)·형승(形勝)·산천(山川)·토산(土産)·성곽(城郭)·관우(館宇)·누정(樓亭)·학교(學校)·서원(書院)·공서(公署)·교방(敎坊)·좌영(左營)·역원(驛院)·교량(橋梁)·진강(津江)·장시(場市)·사묘(祠廟)·불우(佛宇)·총묘(塚墓)·제언(堤堰)·명환(名宦)·관안(官案)·좌영관안(左營官案)·오수찰방관안(獒樹察訪官案)·인물(人物)·우거(寓居)·명현(名賢)·유일(遺逸)·효자(孝子)·효녀(孝女)·효부(孝婦)·열녀(烈女)·충신(忠臣)·문과(文科)·음사(蔭仕)·무과사(武科仕)·무과(武科)·남무(南武)·생원(生員)·진사(進士)·호액(戶額)·전안(田案)·재곡(財穀)·공부(貢賦)·진상(進上)·병안(兵案)·이안(吏案)·천안(賤案)·공장(工匠)·서판(書板)·제영(題詠)·기문(記文)·보유(補遺)·발문(跋文) 등으로 되어 있다.

이 읍지의 저본은 1699년(숙종 25)≪동국여지승람≫의 신증(新增) 명령시에 이도(李燾)·최여천(崔與天) 등이 편찬한 것인데, 1752년(영조 28) 남원복호사적(南原復號事蹟)이 작성된 것으로 보아 편찬 연대는 1752년 이후로 본다. 구지(舊誌)와 신증(新增)편을 구분하여 기록하고 있는데, 구지로 표기된 부분은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유사하다.

이 읍지의 특징은 사찬읍지(私撰邑誌)로서의 성격이 부가되고 있는 점이다. 증보된 내용은 지방 사회에서 활약한 인물이 중심이 되고 있으며, 그 밖에도 재정적인 측면이 강조되고 있다. 건치연혁조에는 찬자의 안(按)이 부기되어 있으며, 성곽조에는 정유년의 왜의 침입과 관련된 사실이 서술되어 있다.

서원조에는 서원마다 사액(賜額)의 유무와 건물·제기(祭器)·제복(祭服)·전답·노비·제문(祭文) 등이 기록되어 있다. 장시조에는 장시일이 기록되고, 교방조에는 기생·전악(典樂)·시가(詩歌) 등이 기록되었으며, 호액조에는 기묘식(己卯式)이 기록되어 있다.

천안조에는 내노비(內奴婢)·각사노비(各司奴婢)·기생·동기(童妓)·역노비(驛奴婢)·역보(驛保)가 기록되었다. 공장조에는 사기장(砂器匠)의 피역(避役) 등이 지적되고, 제영조에는 양성지(梁誠之) 등의 시가 실려 있으며, 기문조에는 남원에서 싸운 장사(將士)의 사제문(賜祭文) 등 잡문이 실려 있다.

또한, 이 읍지의 편찬 시기에 생존하였던 인물들의 명단이 효자에서 진사까지 기록되고 있음이 특이한 점이다. 규장각도서에 있는 ≪호남읍지 湖南邑誌≫에 수록되어 있는 읍지와 비교하면 그 내용이 매우 충실하다. 규장각도서에 있다.

참고문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호남읍지(湖南邑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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