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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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일제강점기 전주 육영보통학교 교장, 전주 제이공립보통학교 학무위원 등을 역임한 교육자.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이칭
이칭
楓川碩謨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71년(고종 8) 2월 28일
사망 연도
1942년 11월 30일
본관
동래(東萊)
출생지
전라북도 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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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전주 육영보통학교 교장, 전주 제이공립보통학교 학무위원 등을 역임한 교육자.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생애 및 활동사항

1871년 전라북도 전주에서 출생했다. 1890년 전라도 승보복시(陞補覆試), 1891년 3월 친림응제문과(親臨應製文科) 초시, 10월 성균관 진사복시(成均館進士覆試)에 합격했다. 1906년 11월 전주에서 사립 함육학교(涵育學校)를 설립하고 학감으로 재직했으며, 1908년 11월 공립 전주보통학교 학무위원, 1910년 3월 공립 전주농림학교 상의원(商議員)을 지냈다.

한일강제병합 후, 1911년부터 1913년까지 사립 전주 육영보통학교 교장, 1913년 7월 전주제이공립보통학교 학무위원, 1914년 12월 전주군 참사, 1917년 3월 전라북도 참사에 임명되었다. 1918년 1월 전주 유지들과 함께 조선총독에게 전주지역에 조선척식 1개 여단 배치 청원서와 성금 5만원을 헌납했다. 1919년 4월 3·1운동을 경거망동이라 비난하고, 운동의 확산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설립된 전북자성회(全北自省會)의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1920년 12월 전라북도 민선 도평의회원에 당선되었다. 1921년 5월 전라북도 내무부 지방과 촉탁에 임명된 이후 1931년까지 지방과 · 사회과 · 학무과 등에서 근무했다. 1922년 10월 대동사문회(大東斯文會)의 전주지회 이사, 1924년 2월 전주제이공립보통학교 학무위원을 지냈으며, 1928년 11월 쇼와[昭和] 천황 즉위기념 대례기념장을 받았다.

1933년 6월부터 1936년 6월까지 조선총독의 자문기구인 중추원의 주임관 대우 참의에 임명되어 활동했으며, 1933년 7월 중추원 시정연구회 학예부 위원, 1934년 11월 시중회(時中會) 평의원으로 활동하며, 1935년 10월 시정 25주년 기념표창을 받았다. 이후 1936년 4월 경학원 강사, 1939년 11월 조선유도연합회 평의원으로 활동하며, 1940년 11월 기원2600년 축전기념장을 받았다. 1941년 9월 조선임전보국단 전라북도 지역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조선에서의 징병제 실시에 대해 1942년 5월 「경성일보」에 이를 적극 동의하는 글을 실었으며, 11월 조선유도연합회의 징병제 실시 한시 모집에 응시해 가작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1942년 11월 30일 사망했다.

정석모의 이상과 같은 활동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9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 Ⅳ-16: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pp.152∼166)에 관련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되었다.

참고문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Ⅳ-16: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현대문화사, 2009)
『친일인명사전』3 (민족문제연구소, 2009)
「전주여단설치청원서」(1918.1.25, 『재등실문서』12, 1999)
『경성일보』(1942.5.11)
『기원 2600년 축전기념 광영록(光榮錄)』(1941)
『조선임전보국단개요』(1941)
『경학원잡지』45(1940.12)
『조선인사흥신록(朝鮮人事興信錄)』(1935)
『조선총독부 시정25주년 기념표창자 명감』(1935)
『고등경찰보』4(1935)
『대동사문회보(大東斯文會報)』2(1922.10)
『조선신사대동보(朝鮮紳士大同譜)』(1913)
『조선총독부관보』
『조선총독부 소속 관서 직원록』
「各道議員推薦ノ件(정석모, 1921.3.26)」(『중추원조사자료』)
집필자
김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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