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연은 농촌으로 돌아가 집을 짓되 남쪽으로 창을 내고, 약간의 전답을 마련하여 손수 농사를 짓겠다는 내용이고, 2연은 누구인가 화려한 도시 생활로 되돌아오라고 꾀어도 결코 돌아가지 않고 새 노래를 들으면서 살겠다는 내용이다. 끝의 3연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왜 이러한 곳에서 사느냐고 묻는다면 대답 대신 웃겠다는 내용이다.
김상용의 경우, 이러한 친자연적 태도는 그 중간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초기 시에서 보인 ‘죽음과 허무의식’에서 벗어나 관조적 시세계를 보이고 있다. 김상용의 이러한 전원회귀(田園回歸)의 친자연적 태도는 산문에도 빈번히 나타난다.
특히, 수필집 『무하선생방랑기(無何先生放浪記)』에서 “서울의 동(動)과 정(靜)이여, 서울의 추(醜)와 악(惡)이여, 요강 같은 존재들이여! 그 존재를 받쳐놓은 지린내나는 소반이여! 지금 나는 너의 소굴을 벗어나 정처없는 길을 떠날 때, 코를 풀어 네 앞에 던지는 것이다.”라고 한 작자의 태도는 『망향』에 수록한 시편 가운데 전원적 향토색을 띠는 시편들과 연관되고 있다.
이러한 친자연적 태도는 강냉이밭으로 둘러싸인 고향에 대한 향수로 나타난다. ‘강냉이’는 김상용의 향수와 긴밀한 관계로, ‘강냉이’를 통하여 고향을 환기하는 강렬한 연상작용이 이루어지고 있다.
마지막 연의 “왜 사냐건 웃지요”에서 ‘웃음’의 표면적인 의미는 ‘삶’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피하고 그저 웃어넘긴다는 것이다. 그 함의(含意)는 쉽사리 대답될 성질도 아니지만, 현실에 적극 참여하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인생 태도라 할 수밖에 없다.
작자가 이러한 전원회귀의 인생 태도를 가지게 된 외적 요인으로는 그 시대 우리 민족이 겪었던 수난과 한계상황이 지적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