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남도 덕천 출신. 평양 숭실중학교를 거쳐 1937년 숭실전문학교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1937년에 결성된 ‘단층(斷層)' 동인의 한 사람으로 김이석(金利錫)·김화청(金化淸)·유항림(兪恒林)·양운한(楊雲閒)·구연묵(具然默)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940년 간도로 갔으며, 1942년 10월 예문사(藝文社)에서 『재만조선인시집(在滿朝鮮人詩集)』을 펴내기도 하였다. 8·15광복 직후 평양에서 평양예술문화협회 및 북조선문화예술총동맹에 가담하여 작품활동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는 1930년 17세 때 『조선일보』에 「연심(戀心)」 등을 발표하여 시작활동에 들어선 이후, 『비판(批判)』에 실린 「폐허(廢墟)에 비친 가을 석양(夕陽)이여·고목(枯木)에 새긴 노래」를 위시하여 바로 이듬해 「어버이 잃은 가슴이」와 「회향곡(懷鄕曲)」을 『동광』과 『신동아』에 발표함으로써 본격적으로 등단하게 되었다.
이후로 많은 시작품을 발표하였고, 1935년 2월호 『중앙』에 실린 단편소설 「윤초시(尹初試)」는 김동인(金東仁)에 의하여 유망한 신진작가로서 호평을 받기도 하였으며, 단층동인의 문학적 경향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자의식(自意識)을 바탕으로 시를 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