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의 대표시로 1956년 4월호 『문학예술』에 발표되었고, 그의 첫 시집 『김현승시초』에 수록되어 있다. 1991년 미래사에서 김현승의 시선집을 출간하면서 이 작품의 제목을 시선집의 표제로 삼기도 했다. 이 작품이 후에 출간된 전집이나 선집 등에서는 전체를 4연으로 나누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를 근거로 논자들도 아무런 생각 없이 이 작품을 그대로 보고 분석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이다. 시적 구조로 보나, 그것의 첫 발표지와 『김현승시초』에 보면, 작자 자신도 2연과 3연을 합친 하나의 단락으로 하고 있다. 이는 후에 전집이나 선집의 편성 과정에서 빚어진 잘못으로 간주된다.
이 시는 “기도하게 하소서…… / 사랑하게 하소서…… / 호올로 있게 하소서……”와 같이 ‘기도(祈禱)’와 ‘사랑’과 ‘고독’을 주제로 하고 있다.
먼저 첫 단락에서는 ‘기도’의 심상을 핵(核)으로 하여 ‘낙엽’과 ‘모국어’를 결합시킴으로써 경건(敬虔)함과 애수(哀愁)의 정조(情調)를 자아내게 한다. 여기서 ‘낙엽이 지는’과 ‘겸허한 모국어’가 자연스럽게 연계되면서 생명에 대한 경외감(敬畏感)과 차분히 가라앉은 시인의 관조적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그는 신(神)에게 기도하는 자세로 ‘겸허한 모국어’, 곧 기도문과도 같은 시어로 자신의 마음이 채워지기를 염원하고 있다.
두 번째 단락에서는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와 같이 세간(世間)의 일상적 의미로 사랑의 윤리를 강조할 수도 있겠으나, 여기서는 절대자, 곧 그 자신 하나님에게로 가까이 다가가려는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랑은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비옥한/시간을 가꾸게 하소서“와 같이 완성하여 가는 과정, 곧 사랑의 원리는 시간을 두고 가꾸어 가는 과정으로 그는 보고 있다.
세 번째 단락은 자아의 내면으로 향하는 ‘고독’을 주제로 하고 있다. “호올로 있게 하소서……”는 온갖 세속적인 욕망과 고뇌로부터 벗어나 홀로 있고자 하는 염원의 표현이다. 가을의 나무들이 잎을 떨구고 앙상하게 둥치만 남듯이, 인간의 육신적인 온갖 욕망을 떨쳐버리고 본연으로 회귀하고자 한다.
‘굽이치는 바다’로서의 험난한 세간의 행로(行路)를 거치고 ‘백합의 골짜기’로서의 신앙적 행로를 따라 내 영혼은 마침내 ‘마른 나무가지’로 상징되는 무욕(無慾)의 경지에 이르기를 소원한다. 여기서 ‘까마귀’는 통념적인 ‘죽음’의 징후로 상징된 것이 아니라, 내 영혼과 연계되어 있다. “빛을 넘어 / 빛에 닿은 / 단 하나의 빛”인 검은빛의 까마귀는 나의 마른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영혼의 새’로 상징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