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10월 『가톨릭청년』(통권 5호)에 발표되었다. 거울을 주제로 한 또 다른 이상의 작품으로는 「오감도(烏瞰圖) 시 제15호」와 「명경(明鏡)」 등이 있다.
6연 13행의 자유시로, 행과 연은 구분되었으나 띄어쓰기는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이상은 다른 많은 작품에서도 띄어쓰기를 하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정서법이나 기존의 율격의식 같은 모든 상식이나 질서를 거부한다는 뜻도 된다.
「거울」은 ‘꽃’이나 ‘산’ 등 자연을 대상으로 한 서정시와는 달리, 자의식의 상관물인 ‘거울’을 대상으로 자의식세계를 그린 것이다. ‘거울 밖의 나’와 ‘거울 속의 나’를 대응시키고 있지만, 그 둘이 끝내 합쳐질 수 없는 자아분열(自我分裂)의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자아를 상실하고 고뇌하는 현대의식의 비극성을 나타낸 것이다.
‘거울’, 곧 자의식은 인간이 그 자신과 만나는 의식공간이기도 하다. 자의식의 주체인 ‘나’와 그 객체가 되는 ‘나’와의 관계를 교묘하게 극화시킨 이 시는 “거울 속에는 소리가 없소”라는 너무나도 당연한 진술로 시작된다. 뿐만 아니라 내 말을 못 알아듣는 두개의 귀가 거울 속에 있다고 한 것이라든지, 또는 악수를 받을 줄 모르는 왼손잡이라고 한 것 등 모두가 ‘거울’을 통해서 인지할 수 있는 평범한 사실들의 나열이다.
그럼에도 이런 평범한 사실들의 환기가 우리들에게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은 바로 여기에 이 시의 묘미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잊고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나치던 것들을 충격적으로 환기시켜주고 있다. 이 시의 핵심부인 5 · 6연에서 작자는 현대인의 불안과 절망, 그리고 비극성을 제시한다. 내가 거울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그 속에 내가 존재한다는 불안감이나, 또는 현실에 쫓기는 ‘나’와 ‘거울 속의 나’는 서로 제어할 수 없는 분열을 겪고 있는 좌절과 비극성이 바로 그것이다.
이상의 경우, ‘거울 밖의 나’는 또 하나의 나인 ‘거울 속의 나’와는 전혀 어울릴 수 없는 낯선 관계로, 자의식 속에 떠오르는 ‘나’에게 접근될 수 없는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서로가 단절되어 있는 이 두 개의 자아가 합쳐질 때 비로소 완전하고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두 개의 자아가 끝내 합쳐지지 않고 대립되고 분열되어 결국 파멸의 길로 치닫게 된다. 이상의 비극성은 바로 여기서 형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이상의 거울 모티브는 분열적 내면이라는 문제에서 벗어나 주체와 타자의 문제로 그 의미가 확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