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1952년경 작자가 릴케(Rilke,R.M.)의 시에 심취되었을 때로 추정된다. 이것은 작자의 ‘꽃’을 제목으로 한 세 편의 시와 「꽃의 소묘(素描)」·「꽃을 위한 서시(序詩)」 등 일련의 작품들이 1950년대 초엽에 창작되었으며, 1961년에 신구문화사에서 간행된 『한국전후문제시집(韓國戰後問題詩集)』에 실릴 때 그 후미에 적힌 연대로 미루어본 것이다.
이 작품은 전집에서 볼 때, 「꽃의 소묘」와 「꽃을 위한 서시」 등과 함께 ‘꽃의 소묘’부에 실려 있다. 꽃을 소재로 한 시편들의 대부분이 정감과 영탄조로 되어 있는 데 반해, 김춘수의 「꽃」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그러한 상식적이고 일반화된 통념에서의 발상법을 전면 거부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라고 한 첫 머리부터 특이한 발상법임을 직감하게 한다. ‘나’와 ‘그’, 즉 인간과 사물과의 관계에서 의미 부여가 있기 전에는 ‘꽃’은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제2연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로, 작자는 여기서 ‘꽃’이라는 사물을 대상화하여 관조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꽃을 꽃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깊이의 시학(詩學)을 읽을 수가 있다. 꽃을 정감적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그것을 사물화하여 존재의 깊이를 관찰한다. 즉, ‘꽃’이라는 사물을 상대적 대응체로 대상화하여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제3연의 “우리들은 모두/무엇이 되고 싶다.”에서 ‘우리들’ 속에는 시적 자아인 ‘나’뿐 아니라, ‘꽃’인 ‘그’도 포함된다. 사물과 인간 그 모두가 의미 있는 무엇이 되고 싶은데, 그것이 바로 ‘꽃’이라는 것이다. “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와 같이, 사람은 누구나 ‘꽃’이 되고 싶고, 그 꽃으로 하여금 지고지선(至高至善)의 완미한 존재로 있고 싶어 한다.
이것은 “그는 웃고 있다. 개인 하늘에 그의 미소(微笑)는 잔잔한 물살을 이룬다.”고 한 「꽃 1」(1955)에 이르러 더욱 확연해지며, 온갖 고뇌와 갈등을 해소하고 맑고 고요한 하늘에 잔잔한 물살처럼 퍼지는 화해의 미소를 짓는 높은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