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내소사(來蘇寺)는 조선 전기까지 소래사(蘇來寺)라고 불린 사찰이다. 창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 여러 문인이 소래사에 대해 지은 시와 글이 전한다. 조선 후기부터 내소사라는 명칭이 정착하였으며, 현재는 그 일원이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에 있는 신라시대 혜구(惠丘)가 창건한 사찰.
#개설 대한불교조계종(大韓佛敎曹溪宗) 제24교구 본사(本寺)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末寺)이다. 부속 암자로는 입구의 지장암(地藏庵)과 절 후방 1.5㎞ 지점에 청련암(靑蓮庵)이 있다. 내소사 일원(來蘇寺 一圓)이 1986년에 전라북도 기념물(현,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규보는 “경신년(1200년) 8월 20일은 아버님의 제삿날이다. 하루 앞서 변산 소래사에 갔는데, 벽 위에 고 자현거사의 시가 있었다. 나도 이에 화답하여 두수를 벽에 썼다.”라고 하였다. 원감국사 충지는 “의상암(義湘庵) 높이 솟아 하늘이 기둥에 잇닿아 있고, 자씨당(慈氏堂) 깊숙하여 돌이 관문 되어 있네. 세상 피해 높이 살긴 이만한 곳 없으리니, 고달픈 새 미리 알고 돌아온 것 자랑하다.”라고 읊었다. 또한 선탄은 “두견새도 역시 서루(西樓)의 달 좋아해서 밤이면 배꽃 핀 가지 위에서 울고 있다오.”라고 읊었다. 1902년에 관해(觀海)가 중창(重創)한 뒤, 1983년에 일주문(一柱門)을 세우고 1985년에 대웅보전을 중수(重修)하였다. 1986년에 천왕문(天王門)을 짓고 설선당과 요사를 보수하였다. 1987년에 봉래루를 해체 · 복원하였으며 1988년에 요사(寮舍)인 진화사(眞華舍)를 건립하였다. 1995년에 수각(水閣)과 종각(鐘閣)을 짓고 범종(梵鐘)을 조성하였다. 고려 「동종」은 1222년(고종 9)에 변산 청림사(靑林寺)에서 제작되었는데 없어졌다가 1850년(철종 원년)에 땅속에서 발견되어 내소사로 옮겨졌다. 높이 103㎝, 입지름 67㎝의 크기이며, 그 표현이 정교하고 사실적이어서 고려 후기 걸작으로 손꼽힌다. 「백지묵서 묘법연화경」은 1415년(태종 15)에 필사되었다. 모두 7권으로 되어 있는데, 각 권은 마치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절첩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접었을 때의 크기는 세로 36㎝, 가로 14㎝이다. 권7의 말에 있는 발문(跋文)에 의하면, 이씨 부인이 망부(亡夫) 유근의 명복을 빌기 위해 필사하였다고 한다. 1633년(인조 11)에 건립된 「대웅보전」은 앞면 3칸 · 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대웅보전은 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를 깎아 서로 교합하여 만들었으며, 법당(法堂) 내부의 벽면에 그려진 관세음보살상(觀世音菩薩像) 등의 그림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건물은 호랑이가 화현(化現)한 대호선사(大虎禪師)가 지었으며, 벽화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화현인 황금빛 날개를 가진 새가 그렸다고 한다. 1700년(숙종 26)에 제작된 「영산회 괘불탱」은 길이 10.50m, 폭 8.97m의 크기이며,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삼층석탑」은 고려시대 석탑으로 대웅전 앞에 세워져 있다. 「설선당과 요사」는 1640년(인조 18)에 지어진 것으로, 설선당은 청영대사가 주도하여 앞면 6칸 · 옆면 3칸의 지붕에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고, 요사는 앞면 6칸 · 옆면 2칸의 지붕에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2층 맞배지붕집이다. 18세기 초에 조성된 「목조 아미타삼존불 좌상」은 화재 이후 대대적인 중창이 진행되어 조각승 상정과 계초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외에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1414년(태종 14)에 처음 세웠다고 전하는 봉래루(蓬萊樓)가 있다. 원래 명칭은 ‘만세루(萬歲樓)’였다. 1823년(순조 23)에 중건할 때까지도 ‘만세루’였다가, 1926년에 ‘봉래루’로 명칭을 바꾸었다고 한다. 봉래루는 부안 실상사지(實相寺址)에서 옮겨 세웠다는 설도 있다.창건
고려시대
사찰 명칭의 변경
내소사의 중수
중요 문화유산
참고문헌
원전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단행본
-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 상(上) (문화재관리국, 1977)
- 『전통사찰총서』 9 (사찰문화연구원, 1997)
- 『한국(韓國)의 명산대찰(名山大刹)』 (국제불교도협의회, 1982)
논문
- 이인식, 「내소사 영산회괘불도 연구」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8)
인터넷 자료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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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불교의 한 종파의 우두머리인 큰절의 관리를 받는 작은 절. 또는 큰절에서 갈라져 나온 절.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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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조선 성종의 명(命)에 따라 노사신 등이 편찬한 우리나라의 지리서. ≪대명일통지≫를 참고하여 우리나라 각 도(道)의 지리ㆍ풍속과 그 밖의 사항을 기록하였다. 특히 누정(樓亭), 불우(佛宇), 고적(古跡), 제영(題詠) 따위의 조(條)에는 역대 명가(名家)의 시와 기문도 풍부하게 실려 있다. 55권 25책의 활자본.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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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중국 당나라의 장군(592~667). 이름은 열(烈). 정방은 자(字). 현경(顯慶) 5년(660)에 나당(羅唐) 연합군의 대총관으로서 13만의 당군을 거느리고 백제의 사비성을 함락하고, 의자왕과 태자 융(隆)을 사로잡았다. 661년에는 평양성을 포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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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큰 절에 딸린 작은 절.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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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절이나 왕궁 따위를 보수하거나 고쳐 짓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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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낡은 건물을 헐거나 고쳐서 다시 짓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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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건축물 따위의 낡고 헌 것을 손질하며 고치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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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절에 있는 승려들이 거처하는 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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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물가나 물 위에 지은 정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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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큰 종을 달아 두기 위하여 지은 누각.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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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다음 세대에 계승ㆍ상속할 만한 가치를 지닌 과학, 기술, 관습, 규범 따위의 문화적 소산.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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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2
: 책의 끝에 본문 내용의 대강(大綱)이나 간행 경위에 관한 사항을 간략하게 적은 글.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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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3
: 죽은 남편.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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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4
: 불보살이 중생을 교화하고 구제하려고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하여 세상에 나타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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