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불화는 1700년(숙종 26)에 조성된 영산회괘불화(靈山會掛佛畵)이며 불화의 내용은 『법화경(法華經)』이 설해졌던 인도 영취산(靈鷲山)에서의 설법모임을 도설화(圖說化)하였다. 괘불화는 주로 법당 바깥에서 베풀어지는 큰 의식이나 법회에서 사용되었는데, 영산회괘불화의 경우는 특히 영산재(靈山齋)에서 사용되었다.
현재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내소사(來蘇寺)에 소장되어 있다.
세로 9.95m, 가로 9.13m의 크기로 삼베바탕에 채색하여 그렸다. 1997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화원(畵員)은 가선대부(嘉善大夫) 천신(天信)과 5명의 승려가 그렸다.
이 괘불화는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중심으로 다보여래(多寶如來), 아미타불(阿彌陀佛), 문수보살(文殊菩薩), 보현보살(普賢菩薩), 관음보살(觀音菩薩),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의 7존의 모습을 도상화하였다. 일반적으로 영산회괘불은 영산교주(靈山敎主)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중심으로 『법화경(法華經)』의 설법에 참여한 보살과 성문, 호위하는 무리 등을 도상화하지만 이 불화의 경우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7존(七尊)의 모습을 그렸다. 이러한 칠존(七尊)의 도상은 불교의식집 『오종범음집(五種梵音集)』(1661년)에서 그 전거(典據)를 찾을 수 있다. 의식의 진행단계 중에는 의식도량의 교주로 삼고자하는 불보살의 명호를 불러 도량에 강림하기를 청하는 절차인 ‘거불(擧佛)’의 절차가 있는데, 의식의 주존인 석가모니불과 석가의 설법이 진리임을 찬탄했던 다보불, 서방정토의 아미타불인 세 여래가 청해지고 여기에 문수 · 보현보살, 관음 · 세지보살이 결합해 영산회상의 대표적인 불보살을 이루고 있다. 특히 이 불화는 의식집의 거불절차를 도상화한 가장 이른 예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후 18세기 대표적인 불화승(佛畵僧) 의겸(義謙)이 제작한 괘불화의 도상에 영향을 미쳐 경남 진주청곡사(靑谷寺) 괘불화(1722)에서부터 전북 무주안국사(安國寺) 괘불화(1728), 운흥사(雲興寺) 괘불화(1730), 전남 나주다보사(多寶寺) 괘불화(1745), 전북 부안개암사(開巖寺) 괘불화(1749)에서 동일한 도상을 보이고 있다. 각각의 인물이 이루는 크기나 원형의 구도는 설법회상의 구성을 보여주나, 영축산의 설법회를 재현하던 도상은 생략되고 의식집에 수록된 불보살만을 묘사한데서 도상적 변모를 알 수 있다.
이 불화의 수화사(首畵師) 천신(天信)은 이 불화 외에도 1687년작인 경남 쌍계사 영산회후불화와 1963년작인 흥국사 대웅전 후불탱(보물, 1974년 지정)등의 작품을 남기고 있다. 천신 작품의 특징으로는 불 · 보살상의 얼굴과 머리모양에서 가장 잘 나타나고 있는데 둥근 얼굴에 양 볼은 홍조를 띄고 있으며 반달형의 눈썹과 반개(半開)한 눈, 작은 입의 천진한 얼굴 등의 인물표현이라 할 수 있다.
색채는 붉은색과 남색, 녹색이 주조색으로 사용되었으며 전체적으로 밝고 파스텔톤의 색조를 띤다. 존명의 옆으로는 각 존명의 이름을 알 수 있는 영산교주석가모니불(靈山敎主釋迦牟尼佛) 등의 방제(旁題)를 붙여 도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인물표현의 특징으로는 둥근 얼굴에 코와 입이 중앙으로 몰려 작게 표현되었다.
이 불화는 영산교주 석가모니불을 비롯한 칠존의 도상의 전거가 불교의식집 『오종범음집(五種梵音集)』으로 의식도량에 강림하기를 청하는 절차인 ‘거불(擧佛)’의 절차에 있음을 보여주는 첫 괘불화로 의미가 있다. 숙종 26년(1700)에 조성된 이 불화는 콧속의 털까지 묘사하는 필선의 정밀함, 화려한 옷의 무늬와 채색으로 더욱 돋보이는 작품으로 불화승 천신의 화풍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