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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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어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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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어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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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명은 Sardinia melanosticta TEMMINCK et SCHLEGEL이다. 몸빛은 등쪽은 암청색이고, 옆구리와 배는 은백색이다. 옆구리에 한줄로 된 일곱 개 내외의 흑청색 점이 있는 것이 뚜렷한 특징이다.

때로는 그 위쪽에도 몇 개의 점이 있고 등지느러미의 기저에도 세 개의 점이 있다. 배에는 모비늘이 있고, 눈에는 두꺼운 지검(脂瞼)이 있다. 몸길이는 25㎝ 가량이다.

정어리는 외양성 어류로서 우리 나라의 동해안과 남해안에 내유(來遊)한다. 정어리어업이 미증유의 대성황을 이루었던 것은 일제시대 후반기의 일이었으나, 우리 나라에서 정어리어업이 시작된 시기는 이보다 훨씬 앞선 시기까지 소급된다.

그 역사는 꽤 길 것으로 생각되나 문헌상으로는 정어리가 조선시대 이전은 말할 것도 없고, 조선시대 초기나 중기에 이를 때까지도 나타나지 않다가 조선 말기 실학자들에 의하여 저술된 어보(魚譜)류에서 비로소 나타나기 시작한다.

≪우해이어보 牛海異魚譜≫에는 정어리를 증울(0x97660x973d)이라고 하고, 다음과 같이 비교적 상세한 내용을 싣고 있다.

“정어리는 빛깔이 푸르고 머리가 작다. 함경도 연해에서 어획되는 비웃청어[飛衣鯖魚]와 유사하나 맛이 좋고 조금 매워 입을 어줍게 한다. 잡은 후 곧 굽거나 끓여 먹을 수 있다. 며칠이 지나면 어육이 더욱 맵고 두통을 일으키게 한다. 본토박이는 이를 증울(蒸鬱)이라 일컫는다. 매우 찌는듯이 더워 답답한 두통을 말한다. 본토박이는 말하기를, 이 물고기는 장기(瘴氣:습기가 있고 더운 땅에서 생기는 독기)가 변화하여 생긴 것으로서 이 물고기가 많이 잡히면 반드시 장려(瘴癘:장기를 마셔서 생기는 병)가 발생한다고 한다. 본토박이는 많이 먹지 않고 이를 잡아 어류가 희귀한 인근의 함안·영산·칠원지방에 가서 판매한다.”

이를 통하여 1800년을 전후한 무렵에는 진해지방 해안에서 정어리가 잡혔고, 때로는 많이 잡힌 일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자산어보 玆山魚譜≫에도 19세기 초에 흑산도 연해에 정어리가 내유하고 있었음을 전하고 있다.

여기서는 정어리를 대추(大鯫), 그 속명을 증얼어(曾孼魚)라고 하고, “큰 것은 5, 6치이며, 빛깔은 푸르고 몸은 약간 길어 지금의 청어와 유사한데 멸치에 앞서 내유한다.”라고 하였다.

정어리가 널리 알려지고 대량으로 어획된 것은 20세기로 넘어온 이후의 일이다. 1923년 가을 동해안에 미증유의 정어리 대어군이 내유한 일이 있었다. 이 사실은 같은 해 10월 24일에 함경북도 연안에서 정어리의 대폐사(大斃死)현상이 발생함으로써 비로소 알려졌다.

1923년 10월 31일자 ≪동아일보≫ 기사에서는 “요사이 성진 부근의 바다에는 난데없이 고기떼가 몰려와서 손으로도 건질만한 형편이므로 성진 시민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해안에 나가 주워들이는 형편이다. 벌써 7, 8일 동안 모든 시민이 일제히 잡아들인 까닭으로 지금 성진해안은 마치 정어리 천지가 된 모양이더라.”라고 보도하고 있다.

그로 말미암아 소금값이 폭등하여 대부분의 정어리는 썩어버렸다고 한다. 이러한 정어리 대어군의 내유와 폐사는 그 해 9월에 일본에서 발생했던 관동대지진과 어떤 연관성이 있지 않나 하는 억측을 자아내기도 하였으나, 대폐사현상의 원인은 저기압에 의한 하층냉수의 현저한 상승이 주원인이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정어리는 이후 계속하여 대량으로 내유하였다. 정어리 전문어구가 미처 개발되지 않았던 당시에는 각종 정치망·청어자망·고등어건착망 등에 부산물로 잡혔으며, 임기응변으로 지인망으로 어획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점차 정어리 전용어구가 개발되자 정어리어업이 신흥어업으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정어리의 주요 어구는 유자망(流刺網)과 기선건착망(機船巾着網)이었다. 정어리기선건착망어업은 명태기선저인망어업과 함께 근대적 대규모 어업의 쌍벽을 이루고 있었으나 거의 일본인이 독점하고 있었다.

정어리어업은 1930년대 후반기에 이르러 최성기에 달하였는데, 1937년에는 정어리가 1,388,215M/T나 어획되어 최고 기록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1942년부터는 정어리자원이 돌연 격감하여 정어리어업은 곧 폐절되고 말았다.

정어리는 식용 이외에도 유비(油肥)로 가공되어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고, 토마토즙을 섞어 만든 토마토사딘이라는 통조림을 만들어 수출하기도 하였다. 정

어리 어획량의 급격한 감소는 우리 나라 어민에게 큰 타격을 주었을 뿐 아니라, 침략전쟁의 사행에 광분하고 있던 일본에게 더욱 큰 타격을 주었다. 그리하여 정어리를 일본을 망하게 한 물고기라는 뜻에서 ‘일망치’라고 부르기도 하였다고 한다.

일본은 거액의 자금을 투입하여 자원감소의 원인 구명에 나섰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광복 이후에는 간헐적으로 소량이 어획되다가 1970년대부터 남해안에서 상당히 많이 잡히기 시작하여 1970년대 후반기에는 연간 5만M/T내외가 어획되었다.

1988년에는 145,870M/T가 어획되어 점차 어획량이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가공시설의 미비, 어가의 하락 등으로 정어리어업은 아직 인기업종에 들지 못하고 있다.

참고문헌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
『자산어보(玆山魚譜)』
『朝鮮鰯油肥統制拾年史』(朝鮮鰯油肥製造業水産組合聯合會, 1943)
『한국어도보(韓國魚圖譜)』(정문기, 일지사, 1977)
「한국정어리어업사」(박구병, 『부산수산대학논문집』 21,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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