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언충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나주목사, 승지,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구옹(龜翁)
  • 국이(國耳)
인물/전통 인물
  • 본관동래(東萊)
  • 사망 연도1772년(영조 48)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승지|형조참판
  • 출생 연도1706년(숙종 3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남인국 (영진공업전문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나주목사, 승지,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국이(國耳), 호는 구옹(龜翁). 정유석(鄭有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태주(鄭泰周)이고, 아버지는 정문서(鄭文瑞)이며, 어머니는 소영(蘇瑛)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40년(영조 16)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748년 사헌부지평으로서 사간원정언 권항(權杭)과 함께 정시무과 초시에서 59인을 합격시킨 것은 원액(原額) 150인에는 태부족이므로 이에 따른 문제점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10월에는 붕당의 폐를 논하기도 하였다.

1754년 사헌부장령으로 천보되어 당시 국가시책의 급선무로서 붕당을 없애고 국가기강을 세우며, 언로를 개방하고, 백성의 생활안정을 추구하며, 군비를 갖추는 일 등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 해 10월 좌의정 김상로(金相魯)에 의하여 헌관(憲官)으로서 체통이 없다는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가 1756년 장령에 다시 임용되었다. 그 뒤 동부승지를 거쳐 1768년 나주목사로 전보되었다가 같은 해 11월 형조참판에 임용되었으며 승지를 지냈다. 1796년(정조 20) 판윤 권엄(權𧟓)에 의하여 청백리로 천거되었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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