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국이(國耳), 호는 구옹(龜翁). 정유석(鄭有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태주(鄭泰周)이고, 아버지는 정문서(鄭文瑞)이며, 어머니는 소영(蘇瑛)의 딸이다.
1740년(영조 16)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748년 사헌부지평으로서 사간원정언 권항(權杭)과 함께 정시무과 초시에서 59인을 합격시킨 것은 원액(原額) 150인에는 태부족이므로 이에 따른 문제점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10월에는 붕당의 폐를 논하기도 하였다.
1754년 사헌부장령으로 천보되어 당시 국가시책의 급선무로서 붕당을 없애고 국가기강을 세우며, 언로를 개방하고, 백성의 생활안정을 추구하며, 군비를 갖추는 일 등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 해 10월 좌의정 김상로(金相魯)에 의하여 헌관(憲官)으로서 체통이 없다는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가 1756년 장령에 다시 임용되었다. 그 뒤 동부승지를 거쳐 1768년 나주목사로 전보되었다가 같은 해 11월 형조참판에 임용되었으며 승지를 지냈다. 1796년(정조 20) 판윤 권엄(權𧟓)에 의하여 청백리로 천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