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병조참판, 중추원사,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송곡(松谷)
  • 시호정숙(貞肅)
  • 중심(仲深)
인물/전통 인물
  • 본관연일(延日)
  • 사망 연도1444년(세종 2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판서|병조의 참판
  • 출생 연도1389년(창왕 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천규 (단국대학교, 한문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파주 정연 묘역 미디어 정보

파주 정연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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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병조참판, 중추원사,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중심(仲深), 호는 송곡(松谷). 증조부는 종부시령(宗簿寺令) 정유(鄭侑), 할아버지는 평리상의(評理商議) 정사도(鄭思道), 아버지는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 정홍(鄭洪), 어머니는 오중화(吳仲和)의 딸 동복오씨(同福吳氏)이다. 부인은 단양우씨(丹陽禹氏)이다. 안평대군 이용(李瑢)의 장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05년(태종 5) 생원시에 합격하고, 음보(蔭補)로 지평에 재직 중 당시 수상(首相)이던 하륜(河崙)을 탄핵한 일로 순금사(巡禁司)에 내려져 국문을 받았으나 속죄되어 풀려났다. 도관(都官)·정랑을 거쳐 종부시소윤(宗簿寺少尹)에 올랐다.

1420년(세종 2) 다시 장령이 되었을 때 상왕(上王: 태종)이 철원에 가려는 것을 간하다가 진산에 유배되었다. 1424년 다시 장령이 되고, 이어 선공감정·집의·동부대언, 형조·이조·병조의 참판을 지냈다.

1430년 천추사로 명나라에 다녀와 인순부윤(仁順府尹)·중추원사, 형조·병조의 판서를 지냈으며, 1442년 사은 겸 주문사(謝恩兼奏聞使)로 다시 명나라에 다녀왔다. 시호는 정숙(貞肅)이다.

참고문헌

  • - 『태종실록(太宗實錄)』

  • - 『세종실록(世宗實錄)』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청선고(淸選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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