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묵 ()

근대사
인물
대한제국기 궁내부특진관, 경효전제조, 진주군수 등을 역임한 관료.
이칭
천필(天必)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48년(헌종 14)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전주
정의
대한제국기 궁내부특진관, 경효전제조, 진주군수 등을 역임한 관료.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천필(天必). 정동기(鄭東箕)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82년(고종 19) 별시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다.

사간원정언으로 재직중이던 1885년 자신의 죄를 스스로 변명하려 했다는 이유로 언악지에 유배하라는 왕명이 내려지기도 하였으나 곧바로 왕명이 거두어졌으며, 그뒤 주로 홍문관관원으로 재직하였다.

1890년 통례에서 진급하여 당상관이 되었고, 이해에 별시의 시관을 맡았다. 1899년에는 대거비서승(對擧秘書丞)에서 진급하여 종2품의 지위에 올라 경효전제조(景孝殿提調)에 제수되고 칙임관 4등에 서품되었다.

1900년 궁내부특진관에 제수된 두달 만에 다시 경효전제조로 임명되었고, 이해에 삼사관원을 유배하라는 왕명을 거두어달라고 여러 차례 상소한 바 있다.

1901년 진주군수로 부임하여 경상도의 부세 납부를 감독하는 영남 검세관(檢稅官)을 겸임하였다. 1903년 서울로 돌아와 다시 궁내부특진관이 되었으나, 진주군수로 재직할 때 별향미대전(別餉米代錢)을 어음으로 받아들였던 것이 문제가 되어 문책을 받았다. 1904년 궁내부 특진관으로 벼슬을 마쳤다.

참고문헌

『고종실록(高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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