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대경(大卿), 호는 삼구당(三苟堂), 아버지는 정수만(鄭洙晩)이며, 어머니는 조중려(趙重呂)의 딸이다. 정수성(鄭洙性)에게 입양되었다.
1691년(숙종 17)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710년 사헌부지평이 되었으며, 장령을 거쳐 1715년 세자시강원필선이 되었고, 같은 해 12월 다시 장령으로 옮겼다. 1725년(영조 1) 안동부사로 재직할 때 향리를 잘 다스리지 못하여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1727년 남양부사로 재직할 때에는 임금의 능행(陵幸)을 당하여 밤에 횃불을 세우려고 백성들에게 돈을 거두었다가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다시 파직되고 의금부에서 고초를 겪었다. 같은 해 3월 의금부에서 풀려났으며, 11월에는 승정원승지에 서용되었다. 다음해 여주목사를 거쳐 1729년 승지로 천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