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화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 개항기
개항기 때, 교리, 선교관,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순일(舜一)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청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49년(헌종 15)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오종록 (고려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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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개항기 때, 교리, 선교관,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순일(舜一). 아버지는 황주목사 정익영(鄭翼永)이며, 어머니는 양천허씨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70년(고종 7)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춘추관에서 관직생활을 시작하였다.

중앙의 여러 관직을 지낸 뒤 암행어사로 함경도에 나갔다가 돌아와서 1874년 홍문관수찬에 제수되었다. 1875년 서장관으로서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줄곧 홍문관에서 관직생활을 하여 1878년 교리로 승진하였으며, 홍문관에서 왕에게 올리는 상주문에 여러 차례 연명으로 가담하였다.

1879년 감시 초시의 시관이 되었다가 과거가 공정하지 못하였다는 물의가 일어나 잠시 관직을 깎였다가 곧 복귀되었고, 이듬해에 선교관(宣敎官)으로서의 노고로 진급되었다.

1882년 대사간에 제수되어 평생의 관직생활에서 최고 관직에 올랐으며, 이듬해 대사간을 한차례 더 역임하였다. 함경도암행어사로 있던 1873년 겨울 경원에서 도내에 밀수입된 서양포목을 색출하여 모두 불태운 바 있고, 1874년에는 홍문관수찬으로서 상소하여 왕에게 서양문물의 침투상을 언급하면서 유학중흥을 위한 교육강화와 인재등용을 요청하였다. 개항기에 위정척사론의 입장에 서 있던 중앙관료의 한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 『고종실록(高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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