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노언(魯言), 호는 연재(淵齋). 정기년(鄭基年)의 아들이다.
1880년(고종 17) 증광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로에 나아갔다.
1882년 한림소시(翰林召試)에 합격하였고, 홍문관과 사간원에서 여러 언관직을 거친 뒤 1887년 서장관이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세자시강원 겸 필선을 지낸 뒤 성균관대사성에 제수되었다. 2년 뒤 사간원대사간에 제수되었다가 이조참의로 체직되어 별시의 시관을 맡았다.
1897년 명성황후(明成皇后)의 국장에 대한 겸장례비서승(兼掌禮秘書丞)으로서의 노고로 승진되어 이듬해 중추원 1등의관으로 임명되는 한편, 칙임관 4등으로 서품되었다.
1899년 성천군수로 부임하였으며, 그뒤 종2품의 지위로서 궁내부 특진관과 겸장례비서승을 역임하고 나서 일제에 의하여 통감부가 설치된 뒤인 1906년 장례원부경(掌禮院副卿)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