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 산조와 병창의 기예능보유자. 전라남도 화순 출신. 예명은 정달영이다. 유일한 남자 가야금 병창의 명인이다.
7세에 숙부인 가야금의 명인 정남옥한테서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하여, 15세까지 한숙구제 줄풍류 가야금과 가야금산조, 가야금 병창을 익혔다. 당시 배운 가야금 병창은 「죽장망혜」 · 「함평천지」 · 「이노상이」 · 「녹음방초」 · 「편시춘」 · 「가상풍월」등의 단가와 판소리 심청가이다.
15세 때 서울로 올라와 동일창극단에 입단을 했고, 대동창극단, 국극단, 임춘앵국국단, 조선창극단 등 여러 단체에서 반주악사로 활동하였다. 1941년부터 가야금 병창의 명인 오태석에게 「죽장망혜」와 「녹음방초」등의 단가와 판소리 「심청가」를 배웠다.
1965년 사단법인 한국국악협회 기악분과위원을, 1971년 사단법인 한국민속예술연구원에 민속악위원을, 1972년 한국국악협회 조사위원을 지냈다. 수상 경력으로 1984년 경주신라문화제 가야금병창부문 문화공보부 장관상, KBS 국악대상 등이 있다.
전주대사습놀이, 경주신라문화제에 심사위원을 지냈으며, 1988년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예능보유자로 지정을 받았다.
정달영의 병창은 기품이 있고 은은한 맛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의 병창은 많은 단가와 판소리의 「심청가」, 「춘향가」중 여러 대목을 담고 있다. 그 중 단가 「죽장망혜」, 「함평천지」, 「심청가」중 심봉사가 망사대를 찾아가는 대목부터 방아타령까지를 녹음하여 LP음반에 담아 놓았고, KBS 소장 작고명인 자료집에 ‘단오가’라고 하는 「이노상희」와 「녹음방초」등 2곡의 단가가 수록되어 있다.
정달영이 보유한 한숙구제 가야금산조는 한숙구-정남옥-정달영으로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진양-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휘모리-엇모리의 장단구성으로 짜여 있으며 끝에 다시 중모리로 여미는 것이 특징이다.
조의 구성은 각 장단마다 다르게 짜여졌다. 진양조는 우조로 내었다가 계면조로 마친다. 계면조는 한림청으로 돌리고 엇청으로 갔다가 본청으로 돌아온다. 중모리는 계면조로 내고 경제로 돌리었다가 계면 본청으로 돌아온다.
중중모리는 변청계면조로 내었다가 본청으로 돌아와서 우조 몇 장단이 나오고, 다시 계면으로 돌아와 굿거리제로 가다가 자진모리로 넘어간다. 자진모리는 계면으로 일관하는데 중간에 엇가락이 많이 낀다. 휘모리 역시 계면조로 짜여 있고, 엇모리는 계면조로 되어 있는데 중간에 엇청가락으로 갔다가 본청으로 돌아와 마친다.
그의 가야금산조는 다양한 조의 구성과 남성적인 힘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