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기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포은속집』, 『가례집요』 등을 저술한 문신.
이칭
도옹(道翁)
매산(梅山)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85년(숙종 11)
사망 연도
1757년(영조 33)
본관
영일(迎日)
주요 관직
형조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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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포은속집』, 『가례집요』 등을 저술한 문신.
개설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도옹(道翁), 호는 매산(梅山). 정호례(鄭好禮)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시심(鄭時諶)이고, 아버지는 정석달(鄭碩達)이며, 어머니는 권돈(權墩)의 딸이다. 정만양(鄭萬陽)·정규양(鄭葵陽) 형제 및 이형상(李衡祥)의 문인이다. 경사에 통달하고 전고(典故)와 예제(禮制)에 밝았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27년(영조 3) 생원으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31년 승정원주서가 되고, 이어 결성현감(結城縣監)으로 나가 이도(吏道)를 바로잡고 『여씨향약(呂氏鄕約)』에 의거하여 향속의 순화에 노력하였다.

사간원정언을 거쳐 1753년 사헌부지평이 되고, 뒤에 형조참의에 이르렀다. 이인좌(李麟佐)의 난 이후 조정에서 영남인사를 정권에서 소외시키자 연명상소를 하여 그 시정을 진정한 바 있다. 저서로 『매산집』이 있고, 편저로는 『포은속집(圃隱續集)』·『가례집요(家禮輯要)』·『주서절요집해(朱書節要集解)』가 있다.

참고문헌

『영조실록(英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영천읍지(永川邑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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