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도옹(道翁), 호는 매산(梅山). 정호례(鄭好禮)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시심(鄭時諶)이고, 아버지는 정석달(鄭碩達)이며, 어머니는 권돈(權墩)의 딸이다. 정만양(鄭萬陽)·정규양(鄭葵陽) 형제 및 이형상(李衡祥)의 문인이다. 경사에 통달하고 전고(典故)와 예제(禮制)에 밝았다.
1727년(영조 3) 생원으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31년 승정원주서가 되고, 이어 결성현감(結城縣監)으로 나가 이도(吏道)를 바로잡고 『여씨향약(呂氏鄕約)』에 의거하여 향속의 순화에 노력하였다.
사간원정언을 거쳐 1753년 사헌부지평이 되고, 뒤에 형조참의에 이르렀다. 이인좌(李麟佐)의 난 이후 조정에서 영남인사를 정권에서 소외시키자 연명상소를 하여 그 시정을 진정한 바 있다. 저서로 『매산집』이 있고, 편저로는 『포은속집(圃隱續集)』·『가례집요(家禮輯要)』·『주서절요집해(朱書節要集解)』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