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봉진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공조판서, 대사헌,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신암(愼菴)
  • 의경(儀卿)
인물/전통 인물
  • 본관창녕(昌寧)
  • 사망 연도1838년(헌종 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대사헌|이조판서
  • 출생 연도1777년(정조 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조원래 (순천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조봉진 글씨 미디어 정보

조봉진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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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공조판서, 대사헌,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의경(儀卿), 호는 신암(愼菴). 조하정(曺夏挺)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명준(曺命峻)이고, 아버지는 이조판서 조윤대(曺允大)이며, 어머니는 오대유(吳大有)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01년(순조 1) 진사시에 장원으로 합격하고, 1805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정언·부교리·필선·이조참의·대사성 등을 역임한 뒤, 1823년에 한성부판윤을 거쳐 형조판서에 올랐다.

그 뒤 전라도관찰사로 있을 때 둔전(屯田)의 세제문제(稅制問題)와 관련, 조정의 시책에 대한 전라도지방의 민폐유무(民弊有無)를 보고하는 일에 있어 왕을 속였다는 죄목으로 탄핵을 받고, 명천·진도 등지에서 유배생활을 보내다가 2년 뒤에 풀려나왔다.

1833년 동지사(冬至使)로 청나라에 다녀온 일이 있으며, 헌종 때 공조판서를 거쳐 대사헌·이조판서를 지낸 뒤 관직을 떠났다.

참고문헌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헌종실록(憲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 - 『창녕조씨창녕부원군세보(昌寧曺氏昌寧府院君世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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