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치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좌정언, 집현전부제학, 예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이칭단고(丹皐), 정재(靜齋)
  • 자경(子景)
  • 시호충정(忠貞)
인물/전통 인물
  • 본관창녕(昌寧)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예조참판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천식 (전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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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좌정언, 집현전부제학, 예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자경(子景). 호는 정재(靜齋)·단고(丹皐). 태사(太師) 조계룡(曺繼龍)의 후손이며, 전객령(典客令) 조수(曺隨)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좌정승 조익청(曺益淸)이고, 아버지는 강계병마사 조신충(曺信忠)이며, 어머니는 최중연(崔中淵)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길재(吉再)의 문인으로, 1419년(세종 1) 증광문과에 을과장원으로 급제하여 사재감주부(司宰監注簿)가 되었다. 1424년 좌정언에 임명되고 집현전에서 유숙하였으며, 세종·문종·단종 3대를 섬겨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과 더불어 총애를 받았다.

1455년(단종 3) 집현전부제학에 발탁되었고, 세조가 왕위를 찬탈한 뒤 예조참판에 임명하였으나 사직하고 은거하면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1791년(정조 15) 단종의 장릉(莊陵)에 배향되고, ‘노산조부제학조상치의 묘(魯山朝副提學曺尙治之墓)’라 새긴 묘비를 세워 세조의 신하가 아님을 밝혀 충의를 기렸다. 그의 시문은 임종시에 모두 소각되었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참고문헌

  • - 『세종실록(世宗實錄)』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대동기문(大東奇聞)』

  • - 『백씨통보(百氏通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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