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

정치
단체
1945년에 결성된 조선공산당 산하의 노동운동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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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45년에 결성된 조선공산당 산하의 노동운동단체.
개설

약칭 ‘전평(全評)’이라고 한다. 1945년 11월 5일 전국 각지로부터 505명의 대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결성되었다. 그리하여 조선노동조합 전국평의회는 조선민주청년동맹(朝鮮民主靑年同盟)의 청년조직과 더불어 조선공산당의 양대세력이 되었던 단체였다.

기능과 역할

노동자와 무산계급의 해방을 부르짖는 공산주의운동의 기본적·공통적 속성에 따라 조선공산당도 8·15광복과 동시에 노동자의 조직에 착수하였다.

11월 초에는 이미 금속·철도·교통·토건·어업·전기·통신·섬유·광업·조선 등 16개 산업별노동조합 지부의 수가 총 1,194개에 이르렀는데, 이러한 조직들은 이후 전평에 의하여 영도되었다.

결성대회는 명예의장에 레온 주오(세계노동자회의 대표)·모택동(毛澤東)·김일성(金日成)·박헌영(朴憲永)을 추대하고, 위원장에 허성탁(許成鐸), 부위원장에 박세영(朴世榮)·지한종(池漢鍾), 위원에 김창환(金昌煥)·김세응(金世應)·김호영(金浩永) 등 81명의 임원을 선출하였다.

막강한 노동자들의 조직을 가지고 출발한 전평은 그 당시 한국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격화되고 있던 공산진영과 민족진영의 대결에서 공산진영의 전위대 구실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이에 맞서는 민족진영의 대한노동총연맹이 1946년 3월 10일에 결성되기까지 서북청년회를 중심으로 한 민족청년단체들이 전평과 격렬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전평이 최고의 위력을 발휘한 활동은 1946년 9월의 총파업이었다. 경성철도공장과 기관구종업원(機關區從業員)들이 운수부장을 상대로 대우개선을 요구하면서 1주일(9월 16∼21일) 동안의 시한부로 시작된 이 태업은 철도당국이 시한까지 회답을 못하자 23일에는 부산철도종업원이, 24일에는 서울운수부 내의 기관구 중심의 20개 노동단체가 태업에 들어갔다.

또, 출판노조의 동정태업으로 신문이 발간되지 못하였고, 경전(京電)의 태업으로 서울시내는 암흑세계로 변하였다. 이 태업은 폭력혁명의 전초전을 방불하게 하는 10·1 폭동으로 번졌다.

이에 10월 3일 민족진영의 각 청년단체는 이선근(李瑄根)·오정방(吳正邦)·유진산(柳珍山)을 지도위원으로 조국방위전선을 조직하고, 용산역 광장에서 장택상(張澤相)이 지휘한 경찰대에 합세하여 전평원을 토벌하였다.

전평은 최저임금제 확립, 14세 미만의 유아노동 금지, 부인노동자의 산전·산후 2개월 유급휴가제 실시 등 19개 항을 일반 행동강령으로 제시하였으며, 결성대회 선언문에서는 전평운동의 주된 목적이 정치운동이 아닌 노동자들의 경제적 이익추구에 있으며, 그 방법에서도 극좌성을 거부한다고 밝히고 있었다.

그러나 전평은 조선인민공화국 지지, 찬탁운동참여, 9월총파업 등으로 미군정에 대한 적대관계를 분명히 함으로써 결국 극좌정치운동으로 나아갔는데, 전평을 구성한 간부·임원들의 면모를 보아 이러한 성격변화는 충분히 예고된 것이었다.

의의와 평가

전평은 광복 직후 이 땅에서 처음으로 전국노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국가의 건설과 자신들의 생활문제를 토의하였다는 큰 의의를 가지고 있지만, 모든 공산당의 방계조직이 그렇듯이 전평도 조선공산당에 의하여 조직되고 조정되어 출발부터 자발성과 민족의식의 결여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참고문헌

『한국노동운동사』(김윤환·김낙중, 일조각, 1970)
『韓國靑年運動史』(鮮于基聖, 錦文社, 1973)
『한국노동조합운동사』(한국노동조합총연맹, 1979)
『한국현대사』(강만길, 창작과 비평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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