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가흥(嘉興). 자는 공저(公著), 호는 영내(寧耐) 또는 무비(無閟). 개성 출신. 증조는 조국주(曺國柱)이고, 할아버지는 장단부사 조천령(曺川齡)이며, 아버지는 조욱(曺旭)이다.
어려서 학업을 장인 차운로(車雲輅)에게 배워 1604년(선조 37) 개성부의 초시에 수석 합격하여 직부전시(直赴殿試)되고, 1606년(선조 39)에 생원으로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 인조 초에 삼례찰방이 되었다.
이 때 어사 장유(張維)가 호남을 안찰(按察)하여 왕에게 아뢰기를 “조신준이 청렴 봉직으로 역졸(驛卒)을 잘 보살펴, 그 정성에 사람들이 따르고 마축(馬畜)이 점점 늘어나게 되어 호남의 모든 역들이 또한 중하게 여겼습니다.”라고 하였다.
관직이 장연부사에 이르렀다. 또, 일찍이 개성에 왜구가 침입하여 문헌이 회신(灰燼)당함을 보고는 개연하여 산천·인물·풍토·사적을 기록한 『송도잡기(松都雜記)』를 찬하였고, 그밖의 저술로는 『영내유고(寧耐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