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제박(濟博), 호는 고박재(古朴齋). 아버지는 호조참의 조가석(趙嘉錫)이며, 조태억(趙泰億)의 형이다. 권상하(權尙夏)의 문인이다.
1717년(숙종 43)에 학행으로 돈녕부 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722년(경종 2) 내시 교관(內侍敎官)으로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방외(方外)에 노닐며 괴이한 행동을 하기를 좋아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미쳤다고 하였으나, 내행(內行)에 독실하고 문사(文詞)를 좋아하였으며 절개를 숭상하였다. 술을 마시고 나면 이따금 세상 일을 이야기하며 비분 강개한 나머지 눈물을 흘리곤 하였으니, 대개 기사(奇士)였던 것이다.
뒤에 세제익위사 시직(世弟翊衞司侍直)에 임명되었다가, 1724년 사간원으로부터 그의 말과 행동이 시직이라는 직책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탄핵을 받아 교체되었다. 1743년(영조 19) 시직 재직 때에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였다 하여 가자(加資)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