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운경(雲卿), 호는 염재(念齋).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임실 출신. 아버지는 참봉 조병용(趙柄鏞)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安東金氏)로 김헌기(金憲基)의 딸이다.
송병선(宋秉璿) · 기우만(奇宇萬)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학문이 대성하였다. 그 뒤 우국지사 최병심(崔秉心) · 이병은(李炳殷) · 김병주(金炳周) 등과 도의로 교유하면서 격변하는 시국에 대하여 강개(慷慨)한 뜻을 품었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의분을 참지 못하고 한말 사변의 전말과 또는 절의(節義)를 세운 의열사(義烈士) · 의병들의 실적(實蹟)과 문헌을 수집, 『염재야록(念齋野錄)』을 편찬하였다.
평생 정력을 다하여 집필한 그 비사(秘史)가 1938년 11월 일본경찰에 탐지되어 임실경찰서에서 10여일간의 옥고를 치렀다.
그 당시 그 『염재야록』에 서문을 쓴 최병심, 발문을 쓴 이병은, 교정을 본 김영한(金寗漢), 서역을 맡은 조현수(趙顯洙) 이외에 많은 가담인사들까지도 모두 구속되는 한편, 본인 및 그 아버지의 문집초고 등도 모조리 압수당하였다.
울분이 쌓여 병이 나자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또 체발(剃髮)을 강요당하자 “저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구차히 사는 것보다는 차리리 대의를 지켜 죽음을 맹세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음독자결하였다.
문장이 뛰어나고 효행이 독실하였다. 저서로는 『염재문집초고(念齋文集草稿)』 8권이 있었으나 압수되었고 편저로는 『염재야록』 6권 2책이 있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