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군자감, 장악원정, 청송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44년 9월 청송부사로 재임 중에 66세를 일기로 관아에서 죽었다. 그는 성질이 엄중하고 소행이 확고하여 오직 일의 옳고 그름에 따라 행동하였을 뿐 권력에 흔들리거나 남의 말에 따르지 않았다. 사귈 바 못된 사람들과는 아무리 권요귀현(權要貴顯)이라 할지라도 고개를 돌려 상종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는 대간을 모독하고 조정을 농간하였다는 탄핵을 받기도 하였지만 조금도 좌절하지 않았다. 1613년(광해군 5) 형 희일이 계축옥사(癸丑獄事)에 연좌되어 오지로 유배되자 사태가 매우 불측함을 알고 화를 모면할 궁리 끝에 대북파의 인물들과 교유하기 시작하여 7년 만에 드디어 형을 구제, 방환하도록 하는 데 성공하였다.
서사(書史)를 즐기고 전분제자(典墳諸子 : 삼황오제와 제자백과의 서)로부터 패사소설(稗史小說)에 이르기까지 두루 섭렵하였으며 경전에도 힘을 기울였다. 시문에도 뛰어나 그 저작이 매우 많았으나 난리를 겪으면서 많이 유실되었다. 저서로는 『단포유고』가 있다.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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